국내 산행및 여행/산따라 물따라

감미로운 춘향(春香)을 가득 싣고

영원한우보 2006. 5. 14. 17:46

일년에 두어 번 아내의 고향 충청도 청양을 찾는다.

봄철에는 한식을 전후에서 성묘도 할 겸 봄나물 채취 재미가 그만이고,

가을에는 발그스레 익은 감을 따다 곶감을 만들어 먹는 즐거움으로 

시골을 찾는데 매년 결실의 풍요를 보면서 마음이 부요해짐을 느낀다. 

 

행정구역 상으로는 청양군이지만 실제 생활권은 예산군에 더 가까운

운곡면 추광리(雲谷面 秋光里)가 아내의 고향인데 지역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외진 곳으로 아직도 사람들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아  

자연이 오염되지 않고 잘 보존 유지되고 있다.

 

올해에는 백두대간 산행 등으로 미루어오다 오늘(5/13. 토요일)에서야

아내의 고향을 찾게 되었는데 약간의 비가 예상된다는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날씨가 좋았다.

 

산나물을 채취할 도구 몇가지와 간단한 음식을 준비하여 서해안

고속도로를 진입하여 달리는데 비봉과 발안사이의 구간에서 약간

정체 되는가 싶더니 이내 막힘이 없다.

 

 

서해대교를 건너는데 햇빛에 반사되는 대교가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아름답게 다가와 달리는 차안에서 셧터를 눌렀다.

 

송악 I.C를 빠져 삽교호를 지나고 당진과 예산을 달리는 창밖으로는 이미

모내기를 끝낸 논들이 띄엄 띄엄 눈에 뜨이고 모내기를 위해 물을 가두고

써래질한 흔적들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농번기는 시작되었는가 보다.

어렸을 적 농번기에 우리 시골 학생들에게는 농사 일손을 도우라는

농번기 방학도 며칠 씩 있었던 기억이 새롭다.

 

두어시간을 달려 예산군계(界)를 넘어 청양군으로 진입하여 약 5분을 지나

추광리 마을 입구로 들어서니 담배밭과 삼밭이 보였는데 이곳은 구기자와

삼베가 특산물로 삼베라는 천연섬유를 만드는 삼나무의 잎은 대마초의

원료로 악용되어 삼의 재배는 관(官)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동네 입구의 느티나무 한 그루가 시골 정경을 한층 돋우어 준다.

 

동네 이름도 정겨운 아랫말, 중뜸, 윗말을 가로질러 양짓말을 지나자 산 입구에

접어드는데 씨받이 무우밭의 무꽃이 마치 봉평의 메밀곷을 연상케 한다.

 

산길로 접어드니 억새군락과 어우러진 활엽수의 초록 행렬이 바람에

나부끼며 은백으로 변신을 반복하는 모양이 너무나 환상적이다. 

 

 

어린시절 우리집은 대나무 울타리와 돌담장으로 담이 둘러져 있었는데

대나무 숲과 돌담장을 휘감으며 자라던 으름넝쿨이 이맘 때 보라색

꽃을 흐드러지게 피웠던 기억이 이곳에서 그 꽃을 보니 그 때가

되살아 나며 그리워진다.

 

 

이미 아내는 산속으로 入山하여 나물채취에 여념이 없는데 나의 눈에는

서로를 도와가며 공생하고 있는 자연속의 생물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들어온다.

 

 

 

 

 

 

여기 저기서 다투지 않고 공생하는 자연의 섭리를 보면서 내 마음을

추스린다.

 

 

깊숙한 산속에서는 이미 늙어버린 어미 억새가 제법 푸르름을 뽐내고

있는 철없는 애기 억새를 인자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데 그 모습에서

우리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려 진다.

 

 

고개 들어 하늘을 보니 언제 왔는지 뭉개구름이 푸른산과 어우러지고 있다.

 

 

노년(老年)의 노련미와 청년의 생동감이 어우러져 하모니를 이룬다.

 

아직도 여린 생명들은 햇살아래 모여 맨살을 드러내고 따사로운

햇볕을 즐기고 있다.

 

 

나물을 채취하며 만난 산속의 촌로(村老)들은 여유와 정감어린 모습으로

나를 오랫만에 어린시절의 고향으로 인도하고 있었는데 일일이 나물의

이름을 가르쳐주며 요리해 먹는법까지를 찬찬히 얘기해 주었다.

 

그들 덕분에 우리는 이웃에게 나누어줄 수 있을만큼 넉넉히 산나물을

채취하여 여유로이 산길을 내려오는데 하얀 무꽃들이 다소곳이 낮은

소리로 나를 부른다.

 

 

산 모퉁이의 자그만 논의 수로(水路)에서 유영(遊泳)중인 올챙이들도

한껏 망중한을 즐긴다.

 

그 옆에서 하늘거리는 이름모를 꽃들이 나의 시선을 붙잡는다.

 

 

마을로 내려와 방앗간에서 금방 정미한 쌀 한 자루를 사서 봉지마다

가득담긴 산나물과 함께 싣고 귀경하는 내 마음에는 春香의 풍요가

넘친다.

 

예산, 당진 평야를 가로질러 시원하게 달리는 차안은 길옆 논에서

전해지는 흙내음으로 가득하고 서산 저쪽 석양은 오늘의 내 마음을

흔들며 더욱 아름답게 비치니 어찌 찬미(讚美)하지 않을 수 있으리요.

 

송악I.C에 진입하여 서해대교를 올라 서는데 석양은 이제 제 역할을

마치고 저쪽 산너머로 잠자리를 찾아 떠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