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초등학교 친구들과 매우 오랫만에 함께 하기로 한 산행이어서
며칠 전부터 기대하고 있었으나 모두들 이러저러한 개인 사정으로
약속이 취소되어 나 홀로 산행을 하기로 하고 느즈막하게 집을 나섰다.
망월사 역에서 내린 후 신흥대학 앞을 지나고 서울외곽순환도로 공사장을
건너서 홍법사를 우측으로 돌아 산입구에 들어서니 평소에 한적한
길이라 이곳을 이용해 왔었는데 오늘은 더욱 인적이 없다.
낯설지 않은 등산로를 따라 10여 분을 오르니 春色으로 단장한
사패능선과 포대능선이 나를 부른다.
우측으로 저 멀리에는 선인봉과 자운봉이 손짓하는데
뒤 돌아보니 수락산과 불암산도 길 건너 멀리서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우측으로 보이는 사패산 쪽의 계곡에는 흐드러진 산벗꽃과 바위들이
어울어지고 있었다.
산 중턱쯤에 이르러 포대능선 방향으로 우측길을 따라 오르니
목을 축여 가라고 조그만 옹달샘이 나타나는데 오늘도 바위틈을
비집고 졸졸 떨어지는 시원한 물이 나를 잡는다.
이제 기묘한 바위와 그 틈새에서 자라고 있는 생물들이
도봉산의 면면을 보여주기 시작 하는데
산 아래에는 이미 지기 시작한 진달래가 중턱을 넘어서자 이제
한창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암벽위의 진달래는 더욱 예쁘다.
기암위에 소나무의 푸르름이 멀리 시내의 아파트를 배경으로
더욱 靑靑하다.
더 가까와진 도봉산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봉우리가 진달래와
뭇 松들을 호위하는 양 서 있는데,
소나무와 진달래의 어울림이 동양화의 극치를 이루고,
고난을 견디다 못해 고사한 고목마져 도봉산의 정취를 더한다.
따스한 햇살에 더욱 신이 난 소나무와 진달래의 합창소리는
옥타브를 높여가고,
소나무 가지 위로 보이는 선인봉 등 도봉산 봉우리들이 한층
아름답다.
포대능선을 오르는 길가에는 바위틈새를 헤집고 피어난
꽃무리가 생명의 귀함을 일깨운다.
포대능선에 올라 1Km 앞에 나타난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등이
더욱 뚜렷하게 그 위용을 자랑하는데,
발아래 바로 밑에는 망월사가 자그마하게 보인다.
바위틈새를 따라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습에서 생명의 고귀함을
한번 더 새기며,
거기에서 그렇게 생명의 존귀함을 교훈하는 소나무는
보고 또 보아도 선비의 여유로운 모습이다.
거대한 바위와 아직 잎새를 티우지 못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봄날의 하늘이 눈부시게 맑다.
도심의 풍경과 어우러진 동양화의 화폭들은 그칠줄 모르고
계속되는데,
자운봉 앞의 소나무가 자운봉과 고락을 같이한 세월의 영욕을
나에게 전해준다.
자운봉을 무모하게 맨발로 도전한 용감무쌍한 여인에게 자운봉은
만용을 나무라는 듯 내려다 보며 허락하지 않고 있는데,
기어이 그녀는 산악구조대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저 멀리 삼각산이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그 자태가
너무나 아름답다.
여기저기 동양화의 아름다움은 그칠줄 모르고,
몇명의 매니아들이 칼바위 능선을 즐기고 있다.
칼바위 능선을 우회하여 지나고 오르기를 반복하며 도봉산의
경관을 즐기는 나에게 시내를 굽어보고 있는 노송이
쉬어가라고 소매를 당긴다.
백운대와 함께 삼각산의 위용이 대단하게 내 앞에 다가서며
나를 기다리고 있노라고 속삭인다.
그래 다음주말에는 너의 품속으로 안겨주마고 약속하지
않을 수 없다.
우측으로 눈을 들어보니 오봉이 석양에 그 모습을 뽐내고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 다정스럽다.
뒤돌아 보니 오늘 내가 지나온 도봉산 능선이 아름답게 석양에
빛나고 있다.
여기서 등산객의 도움으로 풍경속에 나를 한 장 넣은 후
아쉬운 발길을 계속한다.
우측으로 오봉을 바라보며 진달래 만발한 한적한 소나무 오솔길을
걷는 나는 너무나 행복하여 `이 순간이여 영원하라!'를 되뇌이며
걸음을 늦춰본다.
도봉 주능선 길을 따라 걷다보니 이제 시간도 저물어 가고 있어
우이암 쪽으로 방향을 잡아 무수골 매표소로 하산하기로 하였다.
못내 아쉬워하며 뒤돌아 보는 나에게 도봉산은 재회를 기약하는
손짓으로 나를 위로한다.
바위 사이로 난 길을 지나고 보문산장, 원통사를 지나 무수골 계곡으로
들어서서 걷는 길 양편으로 벗꽃들이 하늘거리며 반기고 제법 목청높여
개선행진곡을 불러주는 계곡의 물소리가 시원스럽다.
산벗꽃 잎새 둥실 떠내려 오는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가 피로를
날리고 무수골을 내려서는 나는 오늘도 아름답고 행복했던 추억을
머릿속에 편집하며 내 보금자리로 향하는 발걸음을 계속한다.
(2006. 4. 22. 토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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