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의 기상대 일기예보는 정확도가 매우 높아졌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창문을 열어보니 잔뜩흐린 하늘은
이미 細雨를 대지위로 落下시키고 있다.
배낭을 짊어진채 우산을 받쳐들고 현관을 나서는 나에게
경비 아저씨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의 눈길을 보낸다.
약속장소로 향하면서 일행들에게 참석여부를 점검해 보니
다들 침대와 씨름중이라고 하여 오늘은 백두대간을 같이하는
친구와 단둘이서 우중산행(雨中山行)을 즐겨야 할 것 같다.
집결지에서 만나 우리는 백화사 계곡을 거쳐 용출봉, 나한봉,
문수봉, 보현봉을 지나 형제봉 능선을 타기로하고 백화사로
가는 버스에 올랐는데 궂은 날씨로 인해 등산객은 보이지 않고
백화사 입구에서 하차한 인원은 우리를 포함한 세 명 뿐이다.
우리는 이곳으로 등산한 적이 있는지 없는지 잘 기억되지 않아
갈 길을 망설이고 있는데 버스에서 같이 내린 차림이 예사롭지
않은 여성 등산객이 이곳 길을 잘 아는지 다가온다.
우리는 그녀가 이끄는대로 능선길을 택하여 등산을 시작하는데
예상대로 그녀는 산에 관한한 우리보다 한참 고수였다.
같이 등반하며 안 사실이지만 그녀는 암벽 등반을 수 년 째 하고
있는 산을 무척 사랑하는 山 사람이었으며 포용력의 여유를 지닌
멋진 山 女人이었다.
백화사 입구를 지나 산길로 들어서니 한두방울씩 떨어지는 빗방울이
빗속산행 준비를 서두르라고 주문하고 나서는데 저 먼 산봉우리에는
이미 비를 머금은 물안개가 우리를 부른다.
산길을 들어선 우리의 배낭에는 빗물이 방울방울 맺혀 땅으로
굴러 떨어지기 시작하고,
안개를 동반한 주변의 경치가 분위기 있는 산행을 예감케 한다.
운무를 배경으로 오늘 우리의 산행을 신고하는데 우중에 그 누구에게
셧터 눌러주기를 부탁할 수 있으랴.
바람따라 펼쳐지는 운무의 행위예술에 감탄하며,
더욱 거세지는 빗속에 우리의 바위 오르기는 쉼이 없다.
운무의 선경(仙景) 연출은 계속되고,
바람의 운무 조종술이 정말 놀랍다.
어느덧 용출봉, 용혈봉을 지난다.
운무가 사라지며 보이는 산자락들의 숨소리가 고요하다.
햇살이 잠깐 비쳐질 때면 그들의 자태는 더욱 눈부시고,
능선의 숨바꼭질은 또 다시 계속된다.
증취봉을 지나자 우중 식사를 피하기 위해 암굴(巖窟)로 안내된
우리는 마음씨 고운 오늘 만난 리더의 배려로 따스한 컵라면까지
맛보며 비에 흠뻑젖어 몰려드는 한기(寒氣)를 물리친다.
나월봉, 나한봉을 지나면서 비는 소강상태를 보이며 햇빛이 구름
사이를 뚫고 나와 주위의 푸르름을 더해주고,
운해는 장관을 연출한다.
우리는 오늘 계획했던 산행 코스를 수정하고 청수동 암문에서 비봉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내리막 산행을 계속하는데 문수봉을 좌측에 앉혀 두고
승가봉을 향하여 나아가니 비 그친 뒤의 서울 시내가 멀리까지 선명하다.
승가봉에 걸쳐있는 승가사를 뒤로하고 사모바위 부근에 이르러 우리는
휴식을 위해 자리를 찾는데 날씨가 거센 바람과 함께 빗방울을 뿌리며
우리를 놀려댄다.
사모바위 주위를 몇 컷 카메라에 담아 가지고 비봉을 향하는데 비봉이
지척에 다가와 선다.
오늘의 리더 도움으로 비봉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주위의 조망이
압권이다.
우리는 세찬 바람을 무릅쓰고 비봉 정상에 올라 진흥왕순수비 앞에
설 수 있었다.
진흥왕순수비(眞興王巡狩碑)는 신라 시대 진흥왕(재위 540~576)의
순행(巡行)을 기념하기 위해 경남 창녕에 창녕비, 이곳에 북한산비,
함남의 함흥(지금의 함주)에 황초령비, 함남 이원군 운시산(雲施山)
마운령비 등 4개의 비가 세워졌는데,
이곳 북한산비는 높이가 1.54m, 너비 69Cm로 그동안 비바람에 많이
마모되어 원래의 비는 국립박물관 전시실로 옮겨 보존하고 있으며
국보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
비봉을 내려와 향로봉으로 향하는데 족두리봉까지의 능선이 우리
앞에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제 족두리봉이 점점 가까와 지는데 족두리봉 오르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우회하여 하산을 계속한다.
용화사 매표소로 내려오는 능선에서 보는 서울 시내는 가시거리가
20~30Km는 족히 되는 듯 가양대교와 남산타워가 손에 잡힐것 처럼
선명하다.
많은 양의 비가 시내를 말끔하게 청소해 놓아 불광동 쪽 시내전경이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같다.
용화사 제1 매표소를 내려오는 길에는 아까시아가 백색 꽃잎을 땅에
뿌려놓고 진한 향으로 우리를 유혹하는데 마침 소나기마져 대지를
힘차게 두드리며 멋진 산행의 대미를 축하한다.
오늘의 산행은 춤추는 운무가 우리를 뒤 따르며 호위하고 금상첨화로
가슴 넓은 山 女人을 만나 그녀의 산사랑 애가(愛歌)를 듣고 즐겼으니
어찌 아니 좋을 손가 !!!!!!!!
(2006. 5. 27.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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