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일차 일정=> 하밀을 떠나 선선으로 이동하여 쿠무타크 사막 관광 후 투루판으로 이동함.
화염산, 천불동, 고창고성, 아스타나 고분군 관광 후 숙소(교하장원호텔)에 투숙.
이틀을 묵었던 상업빈관.
느지막하게 일어나 식사를 마치고 하밀을 출발하여 300Km가 넘는 선선으로 이동을 시작한다.
하밀시내를 벗어나 목화꽃이 듬성듬성 피어 있는 목화밭을 지난다.
어렸을 때 본 이후 실로 수십 년만에 보는 목화밭이다.
회족들의 무덤도 보이고.......................
포도농장도 지난다.
천산의 만년설 녹은 물을 이용해 녹화사업이 펼쳐지고 있는 모습이 곳곳에 보인다.
사막을 가로 지르는 포장도로가 이어진다.
하미과와 포도를 파는 노점상들이 도로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황량한 사막에 샛노란 해바라기꽃이 피었다.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후 일완천(一碗泉)을 통과하면서 공안의 통과검사를 받았다.
다시 이어지는 사막길.
선선(鄯善)으로 들어선다.
선선 시내로 들어서서 늦은 점심식사를 한 식당이다.
식사 후 약 30분 쯤 쿠무타크 사막으로 이동했다.
쿠무타크(庫木塔格,Kumtag) 사막에 도착했다.
입구의 낙타 조형물은 이곳이 쌍봉 낙타의 보호구역임을 상징하고 있으며 타령천하(駝鈴天下)라고
쓰여 있는데 `낙타 방울 소리가 천하에 가득하다'고 하여 옛날 실크로드를 줄지어 지나던
낙타의 방울소리가 울리고 있는 듯 하다.
쿠무타크 사막은 타클라마칸 사막의 변두리로 자연적으로 형성되었으며 모래 지평선과
모래 조형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데 세계에서 유일한 도시속의 사막으로 그 규모는 동서로 62Km,
남북으로 40Km에 이르고 있다.
세계 각처의 사막들은 주변으로 확대되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어 걱정을 자아내고 있으나 이곳은
녹불퇴 사부진(綠不退 沙不進)으로 녹음으로 둘러쌓여 더 이상 사막화가 진행되지 않고 있으며
누란 공주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쿠무타크 사막투어는 지프, 오토바이, 쌍봉낙타 등을 이용하여 사막언덕을 지나 정상까지 오를 수 있으며
시간이 허락되면 걸어서 갈 수도 있으나 무더위로 대부분 사륜구동 짚차를 타고 사막산에 오른다.
미니열차를 타면 누란국의 고성이 있는 곳까지 둘러볼 수 있다고 한다.
사륜구동의 짚차로 모랫바람을 일으키며 사막을 질주하는 스릴만점의 체험을 약 30분 가량 했다.
모래산 정상에 올라..............
입속으로 흡입되는 모래쯤이야~~~
사막산 정상에서 보는 선선시내와 누란국 고성 모형.
누란국 고성을 재건한 모형.
쿠무타크 사막은 타크라마칸 사막의 변두리에 속하는데 명사산의 모래 보다도 더 곱고 모래 지평선을
감상할 수 있으며 모래 조형작품도 만들어 놓아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짚차를 타고 모래언덕을 지그재그로 질주하며 내려왔다.
내려서며 보는 쿠무타크 사막.
쿠무타크 사막의 모래조각공원의 조각작품들(퍼온 사진).
쿠무타크 사막 안내문.
사막으로 접근하기 위해 이용되고 있는 미니 열차.
쿠무타크 사막 체험을 마치고 투루판으로 이동을 시작한다.
투루판으로 이동하며 보는 사막지대의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거무튀튀한 야산들.
근래에 개통된 듯한 도로를 달리는데 천산산맥이 우측으로 따라오고 있고 열기를 식혀 주려는 듯
연중 강우량이 수십mm에 불과하다는 이곳에 차창으로 빗방울이 부딪쳐 떨어지고 있었다.
화염산맥 100Km 중 이곳 10Km 가량이 가장 아름다운 백미 구간이라고.............
화염산 가는 길에서...........
화염산과 천불동을 관광하기 위해 주차장에 버스를 세웠다.
주차장에서 본 화염산.
말 그대로 풀 한 포기 없는 벌거숭이 산에서 열기가 후끈 달아 오르고 있었다.
6세기 부터 13세기에 걸쳐 만들어 졌다는 고대유적인 천불동 관광에 나선다.
지금까지 발견된 천불동 석굴은 83개로 1900년 초 러시아, 독일, 영국, 일본 등 강국들의 탐험대에 의해
90%가 뜯겨져 밖으로 유출되었으며 특히 독일의 폰 르콕(Albert von Le Coq)에 의해 집중적으로
약탈 되었는데 유출된 벽화는 독일의 베를린 박물관, 영국의 대영 박물관, 러시아의 성페테르부르크
박물관, 일본 동경 국립박물관 등에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화염산 계곡의 절벽에 위치한 베제클릭(Bezeklik) 천불동(千佛洞).
위그르어로 `아름답게 장식된 집'이라는 뜻을 가진 베제클릭은 9세기에 만들어진 고대유적으로
절벽에 굴을 파고 그림과 유물들을 매장한 신비스런 곳으로 현재 57개의 석굴이 남아 있으나
그림이 많이 훼손되었고 그 일부는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천불동의 천정과 벽화.
화염산 계곡의 천불동.
천불동에서 본 화염산.
여유자적 전통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위그르족 노파.
풀 한 포기 살지 못할 것 같은 이곳 땡볕 사막지대에도 천산산맥에서 만년설 녹은 물이 계곡을 따라 흘러
나무들이 생명을 부지하며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었다.
백자극리극(柏孜克里克), 베제크릭(Bezeklik), 아름답게 장식된 집 천불동은 1982년 중국 국무원이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화염산(火焰山)의 모습.
화염산은 동서로 100Km, 남북으로 9Km의 산맥을 형성하며 타림분지를 동서로 가로 지르고 있는데
최고봉은 851m에 이르고 평균 500m의 고도로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멀리서 바라보면
불이 붙은 것처럼 보여 이름지어 졌다고 한다.
강수량이 수십 mm에도 못미치는 건조한 날씨 때문에 풀 한 포기가 살지 못하는 검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화염산은 여름이면 50도에 육박하는 기온으로 표면 온도는 80도를 넘나드는 엄청난
열기를 내뿜고 있어 중국에서 가장 무더운 곳으로 기록되기도 하였다.
화염산을 배경으로..............
그날도 화염산은 열기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다음 행선지 고창고성으로 이동하며 보는 트루판의 민가.
고창고성 주차장에 버스가 도착하니 물건파는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들었다.
고창고성을 걸어서 둘러보기란 일정상 시간도 안맞았지만 무더위로 마차를 타고 관광했다.
고성을 관광하기 위해 마차를 탄 아내와................
1500년 전으로 시계를 되돌려 역사여행을 시작한다.
고창고성 소개문.
499년 한나라 출신 국문태(麴文泰)가 고창국을 세웠으며 140년 동안 이어지다가 640년 당나라에 멸망했다.
1500년 전의 역사속으로...........고창고성은 둘레 5.4Km, 면적 200만㎡에 이른다.
고성 너머로는 화염산맥이 펼쳐져 있었다.
전통악기를 연주중인 위그르족 현지인.
627년 고창국의 초청으로 현장법사가 설법을 했던 건물로 보수되었다고 한다.
음향효과를 위해 원형으로 설계되었다고...............
고성을 편리하게 둘러볼 수 있도록 도로를 만들어 놓았다.
짚을 썰어 진흙과 반죽하여 만든 벽돌로 건설한 고성은 외성, 내성, 궁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게 원형이 보존되고 있는 것은 이 지방의 강수량이 아주 적은
건조한 기후덕이라고 해야 하겠다.
약 30분 고성을 둘러보고 매표소 입구로 이동했다.
마차를 타고 보는 고창고성.
우리를 태우고 고성을 한 바퀴 돌고 나온 마부와 마차.
고창고성을 떠나며 물건파는 아이들과.................
다음 목적지 아스타나 고분군으로 이동했다.
아스타나(Astana) 고분군은 고창국과 당나라 귀족들의 공동묘지로 3세기 부터 8세기에 걸쳐 만들어 졌으며
위그르어로 `휴식'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스타나 고분군(阿斯塔那古墓群)은 동서로 5Km, 남북으로 2Km이며 총면적은 10㎢에 이르는데
가장 오래된 묘는 273년, 가장 나중의 묘지는 778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복희와 여와' 조형물.
복희는 오빠로, 여와는 여동생으로 하늘의 뜻에 따라 부부가 되어 아이를 낳아 세상에 퍼뜨린
인류의 시조로 전해오는 중국 신화속에 나오는 神인데 아스타나 고분군 40호에서 명주천에 그려진
`복희와 여와'圖가 출토되었고 이를 형상화하여 고분군 입구에 세워 놓았다.
`복희와 여와'圖는 신장위그르의 여러 고분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남신인 복희와 여신인 여와의
상반신은 사람으로, 하반신은 뱀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남신은 자(曲尺)를, 여신은 가위(컴파스)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구분군 城內로 들어선다.
아스타나 고분군은 넓다란 운동장 크기로 구획되어 있는데 한 구획 공간에 수 십개의 봉분이 있어
그 봉분수는 수 백개에 이르고 있다.
아직까지 발굴되지 않은 봉분은 수 천개에 이른다고 하며 현재 456개의 묘지가 발굴되었으며 그 중
330개의 묘지가 만들어진 연대가 밝혀졌다고 한다.
우리는 발굴된 묘지 중 일반에게 공개된 215호와 216호 내부를 관람했다.
묘지의 내부는 어두컴컴한 조명등이 매달려 있고 그안에 1500년 전에 그려진 그림이 벽면에 그려져 있고
미이라가 누워 있는데 카메라 촬영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어 몇 컷을 훔치 듯 찍었다.
그동안 발굴된 분묘에서는 수 만점의 부장품과 미이라도 22점이 출토되었는데 투루판시 박물관과
우루무치 박물관 등에 분산되어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복희와 여와를 열 두 지신들이 호위하고 있는 고분군 입구로 나오자 오지트레킹과 문화관광으로
꽤 유명한 H여행사에서 관광 온사람들이 모여 있어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아스타나 고분군은 1988년 중국 국무원이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여러 곳의 관광지를 둘러보고 약 40Km쯤 떨어져 있는 투루판 시내의 숙소로 이동했다.
사막 한가운데에 원유 시추시설들이 보인다.
투루판(吐魯番)으로 들어섰다.
투루판은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 우루무치(烏魯木齊) 남동부의 도시로 비옥한
오아시스의 중심부로 휘옌산(火焰山), 아이딩 호(艾丁 湖), 한대 교하성(交河城), 고창성(高昌城),
남북조 시대에 건설된 바이쯔커리커(柏孜克里克) 천불동 등이 산재해 있다.
투루판은 강우량이 극히 적어 건조하고 여름에는 무더워 화주(火州)라고도 불리고 투루판 분지의
대부분(80%)은 바다 수면보다 낮으며 특히 아이딩 호의 수면은 -157m로 사해(-392m)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저지대에 속하는데 천산(天山)의 남북을 잇는 교통요충지로 실크로드 북쪽의
중간 기착지이자 북쪽으로 우루무치를 지나 중앙아시아로 통하는 분깃점이다.
투루판 시내의 담장 벽화.
담장위로 보이는 성 처럼 쌓은 시설물은 포도를 말리는 건조장이다.
투루판 시가지 모습.
숙소로 들어가기 전 저녁식사를 했던 태양대반점.
사막으로 둘러쌓인 분지의 오아시스 투루판은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오늘과 내일 쉬어갈 투루판 교하장원호텔.
호텔의 운영자 손자로 이 호텔을 물려 받게될 거라고...........재롱이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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