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주 토요일에 산을 찾지 못해서 일까 오늘은 대간길이 기다려져 일찌기
집을 나섰다. 하지가 지난지 두 달이 넘은 요즘 낮의 길이가 상당히 짧아져
새벽 5시가 한참 넘었는데도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다.
6시 20분쯤 집결지에 도착하니 아직은 아무도 보이질 않는다.
무료함을 달래려고 하늘을 보니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건물사이로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자 하나 둘씩 모여드는 산객들로 사당역 주위는
제법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양재역을 출발할 때에 이미 버스는 만석이 되었고 복정역에서 몇 명이 더 탑승하자
버스바닥에 자리잡고 앉은 사람들이 대여섯 명을 넘어섰으나 불평은 커녕 모두들가
희희낙낙이다.
두 시간 여를 달려 저번에 하산하여 식사를 하던 주진리(은티마을) 주차장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곧바로 대간산행을 시작한다.
오늘은 은티마을을 지나서 지릅티재~밧줄지대~희양산~시루봉~배너미 평전~이만봉
~곰틀봉~사다리재~사다리골~분지리로 하산하는 비교적 짧은 코스로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것이라는 대장의 설명을 들으니 가을의 문턱으로 들어서는 요즈음 분위기를
마음껏 즐길 수 있겠다고 싶어 마음은 파란 하늘로 두둥실 떠오른다.
은티마을로 들어서 산길을 향하는 길옆의 붉게 물든 사과는 시각적 기쁨과 함께
입안의 침샘을 지극하고, 억새는 고개를 내밀어 가을 분위기를 물씬 연출해
우리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은티마을 지나자 희양산으로 오르는 산길초입의 안내판이 우리를 환영한다.
희양산(998m)은 충북 괴산군 연풍면과 경북 문경군 가은읍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구왕봉을 급히 곤두박질하여 지릅티재로 내려선 후 다시 급경사를 이루며 오르는
백두대간상에 동서남 3면이 화강암 암벽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산이다.
희양산 남쪽자락에는 천년 고찰 봉암사가 자리하고 있는 바 스님들의 수도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입산을 통제한다는 안내와 함께 통행막이가 허술하게 설치되어 있어
대간을 종주하는 등반객들은 이를 못본체 하고 지나치게 된다.
오늘은 스님인지 모를 사람들 몇 명이 작심을 한 듯 봉(棒)을 하나씩 들고 막아선다.
몇 마디 사정을 이야기해 보았으나 입산을 허락 할 분위기가 전혀 보이지 않으니
난감해질 수 밖에 없다.
등반대장과 집행부에서 의견을 모은 결과 역으로 산행을 해서 이곳으로 하산하자는 결론이
내려졌다. 몇 분들의 볼멘소리도 있었지만 명산산행이 아닌 대간길을 이 코스를 빠뜨리고
우회할 수도 없었다.
우리는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설 수 밖에 없었으며 주차장으로 후퇴하여 버스로 분지리로
이동해 사다리재를 넘어 이곳으로 역행하기 위해 지릅티재를 내려섰다.
다시 돌아 내려오는 길가에는 하얀 참깨꽃이 만발해 있고 오랫만에 도리깨질로
콩 타작을 하는 모습을 수 십년 만에 목격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마을 입구로 내려서니 은티 마을의 자랑거리인 노송이 우리에게 인내의 의미를
역설하고 있다.
이곳에는 아름드리 노송들이 전나무와 어우러져 자태를 자랑하며 열 다섯 그루가
무리지어 서 있는데 수령이 400년이 넘었다고 하며 수고는18 미터에 이르고 둘레는
3.76 미터에 달한다고 안내되어 있다. (2002.7월 괴산군 보호수로 지정됨)
분지 저수지를 지나 분지리 마을로 들어서는 길목의 벼들은 이미 황금빛으로 채색되어
가고 있었으며,
분지리 안말에 도착한 우리는 두 시간 가까이 지체한 시간을 벌충하기 위해 사다리재를
향해 바로 사다리골로 들어선다.
사다리골은 상당히 경사가 심하여 헛기운을 뺀 우리를 괴롭혔고 바람마져 한 점 불어주지
않아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한다.
40 여분을 사투끝에 사다리재에 도착하였으나 주위의 시야가 막혀 있어 땀을 한 움큼
훔쳐내 뿌리며 곰틀봉으로 향한다.
사다리재를 지나 곰틀봉으로 가는 길은 점점 시야가 트이고 곰틀봉에 이르자 시계는
절정을 이룬다.
곰틀봉은 옛날에 곰을 잡기 위해 곰틀을 놓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조망이 일품으로 사방이 탁 트이고 남쪽의 바위가 깎아지른 듯 하여 이곳에 서면
공중을 나는 새가 된다.
곰틀봉에서 이만봉으로 가는 능선은 완만하여 소풍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산행을
할 수 있으며 십 여 분만 걸으면 이만봉에 도착하게 된다.
이만봉은 잡목이 우거져 시야가 불량하여 주위의 경치를 즐길 수 없고 현대판 표지석은
제대로 고정되지 않아 흔들거리고 있었다.
이만봉을 떠나 마당바위 부근에 이르자 다시 시야가 좋아지며 속리산 주능선이
멀리 보인다.
능선을 따라가며 우측의 노송사이로 바라보이는 계곡과 멀리 능선을 조망하며 걷는
산행은 땀을 보상받기에 남음이 있다.
희양산이 저기에 암릉미를 자랑하며 섰는데 희양산의 조망은 구왕봉 전망바위가
으뜸이었음을 뒤늦게 확인할 수 있었다.
소나무에 둘러쌓인 산벗나무는 가을색으로 치장하고 있다.
이만봉을 떠나 이 십 여분을 남쪽계곡과 능선을 조망하며 걷다 보니 희양산으로 가는
능선과 갈라지는 시루봉으로 들어서는 깃점에 도착한다.
시루봉은 희양산과 이만봉을 잇는 정삼각점을 이루고 있으며 대간길에서 약간 비껴서
있는데 넓은 분지 형태의 배너미 평전을 지나 완만한 능선길을 약 십 여분을 오르면
도달할 수 있다.
우측으로 꺾어 들자 천지개벽 때 배가 올라왔었다는 배너미 평전이 나타나는데 그 규모가
상당히 넓어 보였으며 분지 지형은 습기를 머금고 있고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갈대가 가을 분위기를 한껏 북돋우고 있었다.
대간에서 살짝 비켜선 시루봉에 이르자 멀리 속리산 능선과 이화령을 넘어 백화산까지도
시원하게 조망되는데 백두대간 길에서 비켜서 있기는 마찬가지인 악휘봉의 조망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시야가 매우 양호하다.
시루봉의 조망을 잠시 즐긴 우리는 백두대간의 정상궤도로 진입하기 위해 배너미 평전을
지나 오던길을 거슬러 걷기 시작한다.
내려오면서 보는 배너미 평전은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능선쪽으로는 피어난 갈대가
햇볕에 반사되고 있으며,
낮은 지대는 습기를 머금은 땅에 참나무 등 잡목들이 우거져 있다.
백두대간 길로 들어선 우리는 희양산을 향해 능선을 오르내리며 걷는다.
암릉을 비껴서고 산죽길을 지나기도 한다.
노송사이로 동양화는 계속해 그려진다.
시루봉을 떠나온지 한 시간 여만에 희양산 성터를 지난다.
성은 크지 않은 돌로 축성해 놓았는데 많이 훼손되어 있다.
성터를 지나자 지릅티재로 내려서는 급경삿길이 왼쪽으로 보이는데 가늘고 굵은
밧줄이 얽히고 설켜져 있다.
우리는 이곳으로 내려서야 하지만 그토록 기대하던 희양산 정상을 확인하기 위해
능선으로 올라선다.
능선을 올라서자마자 암산인 구왕봉이 시선에 들어오는데 희양산에 머금가는 무게를
느끼게 되고 희양산과 만들어낸 깊고 긴 계곡이 봉암사를 중앙에 품고 흘려 내린다.
희양산 정상부는 거대한 암석이 길게 늘어서 있고 사이사이로 소나무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멀리서 보아도 햇살에 반사되어 하얗게 빛나 웅장한 남성미를 자랑하는 희양산을
입산을 금지시키고 있어서 그런지 너무 초라한 정상 표시가 애처롭다.
어쨋든 우여곡절 끝에 올라온 희양산에서 기념사진 한 장쯤은 남기지 않을 수 없다.
정상부근의 마당바위에 앉아 땀을 식히며 주위 경치를 즐기는 여유를 잠시 가진다.
내려서는 정상부근의 움푹패인 바위에는 아직도 빗물이 마르지 않았다.
좁은 바위사이를 지나고,
유격훈련을 방불케하며 지릅티재로 내려서는 밧줄타기가 시작된다.
전 번에 구왕봉을 내려설 때 처럼 급경사가 계속되어 밧줄에 의지하여 내려서는
거리가 상당히 길고 밧줄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구간도 있어 상당히 위험하며
주의가 요망되는 구간이다.
지릅티재에 도착하니 오전에 이곳을 무섭게 지켜섰던 스님(?)들은 간곳없고 철모르고
가끔씩 울어대는 매미소리만이 고요한 적막을 깨뜨리고 있다.
이제 오전에 되돌아 가던 길을 다시 내려서며 백두대간의 일부인 이곳의 입산통제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햇살에 반사되어 더욱 아름다운 주위의 풍경이 두 번 걷는 발걸음을 위로한다.
은티마을로 내려오며 다시보는 희양산 정상에는 우리를 대신해 구름이 머물고 있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마을 입구의 노송들은 의연한 자태로 가을햇살을 즐기고 있다.
야경을 밝히기 시작한 여주휴게소의 가로등 위에는 상현달이 끼어들어 야경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었다.
'백두대간과 정맥 > 백두대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화산을 지나 조항산으로 (0) | 2006.10.17 |
---|---|
조령산의 암봉을 넘어 제3관문에 서다 (0) | 2006.10.04 |
바람과 동행하여 만난 악휘봉과 노송들 (0) | 2006.08.20 |
더위와 벗하며 밧줄타고 오른 대야산 (0) | 2006.08.06 |
거친 암벽파도를 타고 넘어 올라선 문장대 (0) | 2006.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