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산행및 여행/산따라 물따라

그리운 추억을 더듬으며 오른 불암산

영원한우보 2006. 8. 13. 20:41

오늘은 가벼운 산행이 될 불암산을 향해 나서는데 가슴이 뛴다.

30여 년 전 초등학교 동창들과 배낭메고 불암산에 왔다가 장발(長髮)단속에 걸려 

가위로 머리를 싹뚝 잘린적이 있고,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통기타 들고 이곳을 찾아

젊음을 구가하던 추억이 있으며, 80년대 말 상계동에 거주할 때는 어린 딸들 손을 잡고

아내와 휴일마다 올랐던 기억이 새롭게 다가오는데 근래 십 여년 이상을 近遠에서

스쳐지나기만 했었다.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당고개역으로 전철을 타고 가는 중에도

불암산이 그립고, 몇 년간 살던 동네가 어떻게 변해 있을까 기대감으로

가슴은 가볍게 흔들린다.

 

당고개역에 내리니 우측 아파트 숲 사이로 불암산이 다가서는데 덕릉고개에서

시작되는 완만한 능선길이 아름답게 정상까지 이어진다.

 

오랫만에 등산을 같이하고 있는 친구들 중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참석했는데

덕능고개까지 버스로 이동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무더운 날씨탓도 있지만 오늘은 산행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 바쁠 것이 없어

여유로운 산행인데 뒤로는 수락산이 암릉미를 자랑한다.

 

순한 양의 형상을 한 바위가 등을 들이대며 목마를 태워주겠다고 발목을 당겨,

 

 

몇 명이서 요놈의 등을 타고 암봉에 올라 미리 불암산을 배경으로 포즈를 잡아본다.

 

덕릉고개를 출발하여 완만한 그늘 능선길을 쉬엄쉬엄 한 시간 가량 걸으니 불암산 정상

바로 아래 설치된 이정표 앞에 도착한다.

 

정상을 오르는 왼쪽 길목에는 바위가 구름을 배경으로 폼을 멋지게 잡고 서 있는데

산객들이 오른 발자국인가, 사람들에게 오르기 편하도록 인위적으로 홈을 파 놓은

것인가?(인간들의 편의를 위해 파놓은 것 처럼 보였다)

 

이 바위에 올라서니 서울외곽순환도로가 수락산 가슴을 관통하며 지나고 있고,

 

불암산 정상은 손에 잡힐 듯 하다.

 

조그만 화단에는 여름의 전령사 해바라기가 꽃잎속에 씨알을 감추고 있고,

 

철 지난 매화는 그늘에 숨어 더위를 피하고 있다.

 

 

산이름 佛巖山이 말해주 듯 주위는 기암괴석들이 소나무와 어루러지고 있는데,

 

 

 

 

 

급경사의 거대한 바위를 오르락 내리락 묘기를 부리는 암벽꾼이 우리의 가슴을 졸인다.

 

정상에 오른 우리는 오랫만에 기념사진을 한 장 남기려 하지만 등 돌린 아저씨는

가부좌 틀고 계속해 선계를 여행 중이시니......................

 

잠자리는 우리의 정상정복에 편대를 이루어 축하비행 하고, 뭇 벌레도 우리를 축하하며 

동반산행에 나선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더니 정상 주위의

바위가 어지럽다. ㅉㅉ

 

아름다운 도봉산과 삼각산 능선이 멀리 희미하지만 줌을 당겨 본다.

 

 

정상에서의 휴식을 마치고 불암사를 향하여 하산을 시작하는데 바위를 타고 내려섬이

아기자기 재미있다.

 

 

 

 

정상에 나부끼는 태극기는 우리의 하산을 배웅하고,

 

바위 틈새를 비집고 자리잡은 생명이 自我 존귀감을 더욱 깨닫게 한다.

 

불암산을 내려서는 정상 부근의 소나무는 특별히 아름답다.

 

 

 

우리는 암능길을 조금 내려와 불암사가 내려다 보이는 소나무 그늘아래 식탁을

차리고 둘러앉아 성대한 午餐을 나누며 한담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가진 후

오랫만에 곁들인 잠깐의 오수(午睡)는 別味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내려서는 길목에는 6.25 발발 직후 유격대가 숨어 응전하던 `불암산 호랑이'

은거동굴이 표지판과 함께 보여 아직도 종결되지 않은 남북관계를 다시금 되새겨

보게 되는데 현 정국의 사태가 심히 불안하게 다가온다. 

 

불암사가 저 아래 산자락에 깊숙히 둘러쌓인 채 잠들어 있고,

 

길가의 들꽃들은 여기저기에서 더위에 졸고 있다.

 

 

 

내려오면서 보이는 불암사 뒷뜰의 얕으막한 돌담이 어깨동무한 양 정답고,

 

정성스레 쌓아 올린 돌탑에 添石하는 친구들의 마음은 무엇일까?

 

불암사는 더위에 지친 듯 고요하고,

 

기형의 바위가 풍상을 견디며 강아지를 사랑으로 품고 있다. 

 

불암사는 신라 헌덕왕에서 헌강왕사이(824~882)에 지증국사(智證國師)가 창건하고

무학대사가 중건한 절로 조선 현종(顯宗) 때 판각한 석씨원류경책목판(釋氏源流經冊木板)

212판(보물 제591호)및 지장경언해(地藏經諺解) 30종 379판(유형문화제53호)등 총 591판의

경판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코스모스는 일찌감치 가을을 마중하고 있고,

 

 

나팔꽃과 흡사하게 생긴 메꽃이 쌍나팔로 가을을 부르고 있다.

 

과수원길 너머로 불암산의 벗겨진 머리가 햇볕에 반짝이며 멀어져 가는데

오늘 불암산 능선길은 여유자적함으로 옛 추억을 하나씩 꺼내 새김질하며 눈을

지그시 감고 즐긴 행복한 旅路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