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과 정맥/다시 가는 백두대간

다시 가는 백두대간-우두령에서 황악산을 넘어 괘방령 까지

영원한우보 2014. 8. 14. 22:41

 

오늘은 저번 주 南進으로 산행을 시작했던 우두령에서 北進으로 삼성산과 여정봉을 넘어 바람재로

내려섰다가 다시 된비알을 올라 황악산에 이른 후 백운봉, 운수봉, 여시골산을 지나 괘방령으로

내려서는 산행으로 약 12.4Km(실거리 15.5Km)의 비교적 짧은 마루금을 이어가는 여정이다.

 

백두대간 산행 안내도.

 

황간 T.G를 빠져나온 버스는 영동군 매곡면을 지나서 901번 지방도로로 진입하여 상촌면으로 들어서서

궁촌리를 지나면서 차창밖으로 감나무와 이어지는 포도과수원을 바라보며 흥덕리를 향해 달리다

굽이굽이 고갯길을 힘겹게 올라 저번 주 산행을 시작했던 우두령에 닿는다.

 

우리의 현재 문화적 수준을 상징하는 듯한 거대한 황소상과 에코 브릿지를 씁쓸하게 바라보며

산행장구를 정리하여 들머리를 찾아 마루금에 발길을 들인다.

 

영동군 상촌면 방향의 도로턱을 올라 마루금 산행을 시작한다(10:38).

 

산림청에서 설치한 들머리의 이정표는 지나온 삼도봉 10.8Km, 오늘 넘어야 할 황악산은 7.0Km라고

안내하고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우두령에서 바람재 정상까지 구글어스.

이해를 돕기 위해 같은 코스로 마루금 산행을 하신 블로거의 사진을 빌려왔다.

 

5분 쯤 계단 오름길을 진행하여 첫 번 째 이정목을 만나는데(10:43) ↖바람재 4800m, 황악산 7000m,

↘삼도봉 10Km를 가리키고 있다.

 

첫 번 째 쉼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밋밋한 봉우리를 지난다(10:58).

여기가 870봉인가?

 

두 번 째 이정목이 있는 쉼의자를 지나간다(11:04).

김천시에서 만들어 놓았는데 ↓우두령 1200m, ↑바람재 3800m, 황악산 5800m를 가리키고 있다.

 

삼성산 전위봉을 조망하며 참남무 숲길을 이어간다.

 

전위봉으로 가는 길은 미역줄나무 등 잡목들이 우거져 스틱으로 헤치며 지나야 한다.

 

2006년 4월 1일 백두대간 당시에는 이랬었구나!!!

 

삼성산을 향해서 억새와 싸리꽃이 만발한 길을 진행한다.

 

전위봉을 넘어 삼성산으로 가는 길도 우거진 숲으로 진행하기가 간단치 않다.

 

우두령을 떠나 50분 가까이 걸어 삼성산에 당도했다(11:25).

안락의자 우측 10m 전방에 정상석이 설치되어 있고 마루금은 직진해야 한다.

 

985.6m의 삼성산 정상석은 김천산꾼들이 2011년에 스스로 제작해 세웠다.

여암 신경준의 산경표에는 삼성산(三聖山)이  황간 남쪽 육십리에(黃澗南 六十里) 위치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삼성산은 산경표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나 공무원들은

알 턱이 없고 참다 못한 산꾼들이 세워 놓은 것이다.

 

삼성산 정상은 우거진 나무들로 조망이 전혀 되지 않는다.

 

8년 餘 前 2006년 4월의 삼성산은 이렇게 어느 산악회가 코팅지로 정상임을 표시해 놓고 있었다.

 

우측의 산기슭 삼성암에서 염불소리가 계곡을 따라 올라오고 있다.

삼성산 정상석을 한 바퀴 돌고 ↓우두령 2300m, ↑바람재 2500m, 황악산 4700m를 알리는 이정표를 보며

철쭉나무 터널 속으로 발길을 들인다.

 

삼성산을 내려서며 보는 여정봉과 멀리 황악산 능선.

 

 

 

당겨 본 황악산 능선.

 

열심히 일하는 벌을 보니 괜한 미안함이...............부채질하며 그늘에서 희희락락 세월을 낚고 있는 

베짱이는 아니지만 보통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는 평일에 팔자 좋게 백두대간 산행이라니~~~ 

 

삼성산을 출발하여 10분 쯤 내려서자 ↓우두령 2800m, ↑바람재 2000m, 황악산 4200m를 가리키는

이정목과 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공터(핼기장?)를 지나게 된다.

 

 

보랏빛 닭의 장풀.

흰색도 본 기억이 있는데 어렸을 때 시골에서는 `달개비'라고 불렀으며 `닭의밑씻개'라고도 한다.

 

통나무 밧줄이 이어지는 구간에 서면 여정봉 전위봉이 나타나고 그 뒤로 여정봉이 보인다.

우측으로 눈을 돌리면 바람재 정상과 황악산에서 흘러 내리는 신선봉이 조망된다.

 

여정봉 전위봉 부근에 이르면 또 쉼의자와 ↓우두령 3600m, ↑바람재 1200m, 황악산 2400m를 알리는

이정목이 있고 우측 절벽 아래로 김천시 대항면 주례리를 향해 계곡이 이어지고 있다.

 

절벽 전망대에서 우측으로 눈을 돌려 바라 본 지나온 산줄기.

 

대항면 주례리 방향의 계곡에는 삼성암이 자리잡고 있다.

 

당겨 본 삼성암.

삼성암은 직지사의 말사로써 암자의 현판에는 `千德山 三聖庵'이라고 쓰여 있다고 한다.

 

진행 방향의 바람재 정상과 신선봉.

 

여정봉 가는 길.

 

우두령을 떠난지 1시간 半만에 여정봉(旅程峰)에 도착했다(12:04). 

`여행중에 들려가는 봉우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무슨 오묘한 뜻이 서려 있는 것일까?

어쨌든 백두대간을 처음 할 때 부터 이 구간을 지나며 여정봉과 바람재라는 지명은

생생하게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다.

 

여정봉을 알리는 표지판은 깨진 채 의자에 놓여 있고 이정목은 ↓우두령 4400m, →황악산 3000m,

괘방령 8400m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여기서 직각으로 방향을 틀어 바람재로 내려서게 된다.

이제 코앞으로 다가선 바람재 대신 괘방령의 거리를 표시하고 있었다.

 

여정봉에서 바람재, 신선봉 갈림봉으로 이어지는 구글어스. 

 

여정봉을 내려서는 길가에서 수줍어 하는 물봉선을 보았다.

 

훼손된 바람재 정상은 몇 년 전 부터 복원사업을 하고 있어 좌측으로 우회하여 지나야 한다.

 

바람재 정상 우횟길.

 

무더위에 지친 술파랭이. 

 

바람재로 내려서며 보는 백두대간 훼손지 복원사업 안내판.

벙커, 물탱크, 수로, 옹벽, 마루금 단절 도로, 석축 등을 매몰하고 대간 마루금을 복원중이라는데

파헤치기 전에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하여 제발 자연을 괴롭히지 말았으면 좋겠다.

 

바람재 정상 옆으로 바람재로 오르는 도로와 황악산에서 흘러 내리는 신선봉이 보인다.

 

우회하며 보는 바람재 정상부. 

 

며느리밥풀이 지천으로 피어 있는 산길.

 

전국 각지에서 한많은 며느리들이 다 집결한 듯................시에미 성토가 한창이다.

 

나무 계단을 내려서며 보는 황악산 산줄기.

중앙에 황악산 정상인 비로봉을 비롯하여 우측으로 형제봉과 신선봉 갈림봉이 조망되고

좌측으로는 곤천산으로 산줄기가 이어지며 흐르고 있다.

 

바람재로 내려서며 보는 황악산과 신선봉 갈림봉.

 

우두령에서 거의 두 시간을 걸어 김천시 대항면 주례리와 영동군 상촌면 궁촌리를 잇는 해발 810m의

바람재에 도착했는데(12:29) 8년 餘 前 봄에 이곳에 내려섰을 때 이름값 하며 시원하게 불어오던

바람은 간곳없고 수플이 우거진 넓은 공터에 뜨거운 햇살만 내려 쪼이고 있었다.

 

표지석의 음각된 글자는 비스듬하게 누워 바람이 부는 듯 시각적 효과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바람재의 뜨거운 햇볕을 피해 그늘에서 휴식중인 잠자리.

 

10분 가량 배낭을 내리고 휴식하며 요기를 하고 일어선다.

황악산을 향해 발갈을 옮기며 뒤돌아 본 바람재 정상은 훼손된 구간이 거의 복원된 듯 보였다.

 

바람재에서 황악산 비로봉까지의 구글어스. 

 

참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있는 된비알을 오른다.

바람재에서 신선봉 갈림길 까지 약 20분의 오름이 오늘 오름짓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신선봉 갈림봉에 이르면 이정목은 ↓바람재 0.7Km, ←황악산 1.4Km, →신선봉 1.4Km를 가리키고 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좌측의 황악산으로 향한다.

 

형제봉으로 가며 뒤돌아 본 신선봉 갈림봉.

 

신선봉 갈림봉에서 흘러 내리고 있는 바람재와, 바람재에서 고도를 높이며 바람재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선명하고,  대간 마루금은 우측의 여정봉으로 향하다가 방향을 급하게 좌측으로 틀어서

삼성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는 신선봉 갈림봉에서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몇 번 뒤돌아 보기를 반복하며 형재봉에 오르니 조망은 없고 이정목은 ↓바람재 1.5Km, ↑직지사 3.6Km,

황악산 0.6Km를 나타내고 있다.

 

황악산으로 가며 뒤돌아 본 지나온 산줄기. 

 

강진리 저수지도..............

 

 

억새를 헤치며 정상으로...............

 

황악산 정상으로 접근했다(13:34).

쉼의자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일행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고 10餘 미터 쯤 직진하면 하늘문이 열리며

오늘의 주봉인 황악산이 정상석을 앞세우고 의젓하게 앉아 산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황악산(黃岳山)은 비로봉이 주봉으로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북으로 백운봉,

운수봉이, 남으로는 형제봉, 신선봉이 직지사를 감싸고 있는 1111m의 명산으로 가을 단풍과

겨울 설화가 빼어난 산이라고 한다.

 

옛날 부터 학이 많이 날아 들어 학 鶴자를 써 黃鶴山이라고도 불렸다고 하는데 정상석에는

큰산 岳자를 써서 黃岳山이라고 표기해 놓았다.

 

예전의 정감어린 정상석은 얼마 전 세운 거대한 정상석에 밀려 옆에 나뒹굴고 있었다.

옛 것을 보전할 줄 모르는 근시안적 사고로 인해 溫故知新의 가르침이 헌신짝 처럼 내팽겨쳐진 현실이

못내 안타까운 허탈감으로 가슴이 공허해짐을 느낀다.

 

2006년 당시 황악산 정상의 모습이다. 

이 정상석이 뽑혀 돌더미 속에서 윗 사진과 같이 나뒹굴고 있었다.

 

황악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계곡을 따라 가면 직지사가 자리잡고 있고 그 너머로 경부고속도로와

경부선 철도가 지나가고 있는 것이 조망된다.

 

쉼의자로 되돌아와 배낭을 풀고 식사를 하며 휴식한 후 황악산을 내려서서 헬기장으로 내려서면

↑곤천산 1.2Km, ↓바람재 2.3Km, →직지사 2.9Km를 알리는 이정목이 서 있는데 헬기장을

가로지르지 말고 바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진행해야 한다. 

 

 

황악산 비로봉에서 문수봉, 여시골산, 궤방령까지의 구글어스.

 

계속 내림길을 진행한다.

 

 

황악산을 내려서서 10분 쯤 진행하여 전망이 트이는 밋밋한 전망대에 선다(14:08).

 

전망대에서 뒤돌아 본 황악산과,

 

좌측의 신선봉 방향으로 흘러 내리고 있는 황악산 산줄기.

 

김천시 대항면 방향의 직지사와 직지저수지가 조망되고 경부고속도로와 경부선 철도가 보인다.

 

확대해 본 직지사(直指寺).

황악산 동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직지사는 신라 눌지 왕 때 고구려의 아도화상(我道和尙)이 창건했다는

천 년 고찰로써 태조19년(939년)에 능여대사(能如大師)가 중건했다고 한다.

 

직지사라는 이름은 아도화상이 도리사(桃李寺)를 창건한 후 황악산 직지사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곳에 절을 지으라고 한데서 유래했다고 하는 說, 선종(禪宗)의 가르침인 직지인심 견성성불을

(直指人心 見性成佛) 표방한 데서 유래했다는 說과 능여대사가 이 절을 중건할 때 자(尺)를

쓰지 않고 직접 손으로 측량하여 지었다고 직지사라고 했다는 說이 있다.

 

또한 사명대사(사四溟大師)가 출가하여 5년 간 이곳에서 수도하고 득도했다 하여 더욱 유명한데

지금도 직지사에는 사명각이라는 건물이 남아 있다.

 

직지사에 관련된 방랑시인 김삿갓- 난고(蘭皐) 김병연(金炳淵)의 詩 한 수를 소개한다.

이 구간을 같은 코스로 산행한 어느 블로거의 글을 참고하여 작성했다.

 

김삿갓이 삼천리를 유랑하다가 이곳 직지사에 들렸는데 그를 알아 본 스님들이 김싯갓의 능력을

저울질해 볼 요량으로 문장에 능한 스님을 뽑아 가장 자신 있는 `황악산'과 `직지사'에 대한

詩 짓기로 시합을 하게 되었다.

 

승부를 겨루어 지는 사람이 이빨를 뽑기로 하였으니 김삿갓이 지은 詩 제목이 발치직지승(拔齒直指僧)인데

이 시를 읽은 스님들이 그 자리에서 두말없이 패배를 인정하고 쌩이빨을 뽑았다고 한다.

 

직지사 갈림길 까지는 급경사 계단길이 한 시간 가량 이어진다.

 

황악산에서 20분 가량을 내려와 ↓황악산 1.1km, ←직지사 1.9Km를 가리키는 이정목을 지난다.

 

                           拔齒直指僧(발치직지승)

                                                                                                  난고(蘭皐)  김병연(金炳淵)

                  金烏橒積烏頭白                         금오운적오두백

                  黃岳花開鶴頭紅                         황악화개학두홍

                  秋風嶺上春花怪                         추풍령상춘화괴

                  直指由中路曲何                         직지유중로곡하

 

3분 후 `↓황악산 1070m 쉬었다 가세요'라는 표지판이 서 있는 지점을 지난다.

 

난고 김병연의 詩를 이해하려면 그의 詩諷을 이해 할 필요가 있다.

그는 순수 한글 발음과 한자의 단순 우리말 발음을 빗대어 많은 시를 지었는데 이를테면,

 

`自知는 慢知고, 輔知는 早知라'

`스스로 알려하면 늦고, 도움을 받으면 빨리 알게된다'는 극히 평범한 진리인데

순 우리말로 읽으려면 점잖은 체면에 입에 담기가 쑥쓰러워 진다.

 

↓황악산 1.4Km, ←여시골산, 직지사를 가리키는 지점이다.

 

삶의 굴곡이 그대로 전해지는 참나무 곁을 지나며 평범한 인생길을 가고 있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 지를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金烏橒積 烏頭白       금오운적 오두백'

`金烏'는 `검은 까마귀'로 구미에 있는 金烏山을 끌어들여 황악산과 대비 시키며 검어야 할 금오산은 

겹겹이 겹쳐진 나무 무늬로 까마귀 머리 처럼 하얗게 보이는구나!!!

 

`황악산 1580m 힘 내세요' 라는 격려의 글귀를 보며 진행한다.

 

`黃岳花開 鶴頭紅                        황악화개 학두홍'

`누르스름한 바위가 있어 黃岳이라더니 꽃이 만발하여 鶴의 머리 처럼 붉기도 하구나!!!'

혹자는 이 문장을 黃鶴山으로 불리우는 근거라고 제시하기도 한다.

 

`秋風嶺上  春花怪                            추풍령상 춘화괴'

`추풍령위의 봄꽃이 괴이하구나!'라고 할 수 있으나 황악산 주변의 구미 금오산과 추풍령을 등장시켜

`가을 단풍으로 물들어야 할 추풍령에 봄꽃이 피었으니 참으로 기괴하도다!'고 읊었다.

 

직지사 갈림길에 이른다(14:43).

↓황악산 2.3Km, ↑여시골산, →직지사 0.7Km를 알리는 안내목이 서 있다.

우리는 여시골산 방향으로 직진한다.

 

 

직지사 갈림길에서 300미터를 진행하여 운수봉에 이르렀다.

↓황악산 2600m, 바람재 4800m, ↑여시골산 1600m, 괘방령 3100m를 알리는 이정목이 보인다.

 

 

`直指由中路曲何                    직지유중 로곡하'

直指, 곧게 뻗은 손가락 같다더니 직지사 오르는 길이 이처럼 꼬불꼬불 굽어 있으니 어찌된 일인가?'

금오산이 그렇듯이 황악산- 누런 큰 산에 꽃이 만발해 학머리 처럼 붉고, 추풍령이 그렇듯이

곧은 손가락 같다는 직지사는 오르는 길이 이렇게 꼬불꼬불하니 이 어쩜이뇨!

 

황악산에서 부터는 쉽게 내림길의 연속이라고 생각했지만 자그만 봉우리들이 계속적으로 나타나

다시 한 번 누워서 떡먹기 같은 산행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체험했다.

 

운수봉을 넘어 15분 쯤 진행하여 오름길에서 여시굴이라는 안내판을 만난다.

여시(여우)가 많이 출몰하여 여시골산이라고 불려졌으며 이곳이 여시가 살던 대표적인 굴이라고

소설을 써놓았으나 여시가 이렇게 암석에 수직으로 굴을 팔 수가 없고  예전에 광산지역으로

갱도였음이 확실하오니 관계자들은 사실에 입각한 안내문을 게재하기 바란다.

 

 

어찌 되었든 여시골산에 올랐다(15:27).

황악산에서 4200m을 왔고 괘방령까지 이제 1500m를 남겨두고 있다.

 

 

김삿갓- 난고 김병연은 전국을 주유하며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어느 날 강을 건너기 위해 나룻터에서 처녀가 노젓는 배를 탔다.

 

김   삿   갓: (잡자기 큰 소리로 처녀에게) "여보 마누라~~~"

처녀뱃사공: (무심히 노를 젓던 처녀뱃사공 깜짝 놀라며) "어째서 내가 댁네 마누라란 말이요?

                 처녀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김   삿   갓: (낄낄대며) "내가 당신 배에 올라 탔으니 당신은 내마누라지..."

처너뱃사공: (얼굴을 붉히며) "............."

 

여시골산에서 괘방령까지는 내림길의 연속이다.

 

김삿갓이 배에서 내려 저만치 걸어 간다.

 

처녀뱃사공: (멀리 걸어가는 김삿갓에게 큰 소리로) :"아들아!!!"

김   삿   갓: (깜짝 놀란 김삿갓 뒤돌아 보며) "어째서 내가 처녀의 아들이란 말인가?

                 버릇없이 어른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처녀뱃사공: (히죽거리며) "내 배에서 나갔으니 내 아들이 아닌감요?"

김   삿   갓: (천하의 풍류객 김삿갓도 처녀에게 뒷통수를 한방 되게 얻어맞고 패배를 인정하며)

                 "맞는 말일세 그려~~~ㅎ ㅎ ㅎ"

 

10餘 분 쯤 내림길을 걸어 임도로 내려섰다.

 

 

임도로 내려서서 대간길을 따라 괘방령으로 조금 진행하면 시야가 터지고 다음 구간에 가야 할

가성산이 눈앞으로 저만치 다가선다.

 

확대해 본 가성산과 다음 구간에 이어갈 대간 마루금.

 

김천시 대항면과 영동군 매곡면을 경계하는 괘방령(掛榜嶺)으로 내려섰다(16:02).

과거를 보러 지나던 길로 급제(합격)를 알리는 방이 붙었던 고개라고 하여 괘방령이라고 불렀는데

인근에 있는 추풍령이 국가의 업무수행을 위해 넘나들던 고개로 관로(官路)역할을 했다면

괘방령은 관원들의 간섭을 피해서 상인들이 주로 이용하던 상로(商路)였던 것이다.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방향.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방향. 

 

거대하게 세워진 괘방령 표지석과 괘방령 안내문.

 

 

괘방령 안내문이 위와 같이 표기되어 있으나 혹자는 괘방령(掛榜嶺)이 아니라 계방령(桂榜嶺)으로

표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고려시대 부터 과거 급제자의 명부를 계적(桂籍)이라 하였고 과거 급제자를 알리는 방을

계방(桂榜)이라고 하였으며 신경준의 산경표에도 계방산- 금산서십리(桂榜山- 金山西十里)라고

기록되어 있음을 그 근거로 하고 있다.

 

여하튼 괘방령에는 씻을 수 있는 물이 없어 괘방령산장에서 시원한 맥주 한 병씩을 사서 마시고

보너스로 화장실에 들어가 땀을 씻고 옷을 갈아 입어야 했다.

 

괘방령산장 내부.

 

다녀간 산객들의 이름과 사연들이 기둥과 벽면 사방으로 빼곡하게 적혀 있다.

 

♣산행일시: 2014. 8. 12(화요일).

 

♣산행구간: 우두령~삼성산~ 여정봉~ 바람재~ 황악산~ 운수산~ 여시골산~ 괘방령.

 

♣산행날씨: 대체로 맑고 바람 없으나 무더위 꺾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