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용인대학교 뒤 하고개에서 시작하여 부아산과 석성산을 넘고 할미성을 지나서
아차지 고개에 이르는 한남정맥 4회차 구간을 산행하는 날인데 저번주에 워낙 많이 내린 눈으로
오늘까지 주위의 산야는 잔설이 하얗게 뒤덮여 있다.
용인대 정문에는 `도의를 갈고 닦아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인재양성의 요람'이라는 창학이념(?)이
걸려있고 정문옆에는 `龍脈의 품에 안긴 負兒의 健兒들아 雄飛하는 氣象으로 天下를 號令하라'는
큰 꿈과 높은 기상을 품고 정진할 것을 당부하는 문구가 자연석에 음각되어 있다.
전번 구간과 같이 하고개 터널을 바라보며 우측으로 들어선 후,
U자 지형이 끝나는 지점에서 우측 절개지를 타고 능선으로 올라선다.
능선을 오르며 보니 용인대 뒷편으로 시내 아파트가 즐비하고 그 너머에 용인의 母山인 석성산이
멀리 바라다 보인다.
왼쪽으로는 저번 구간에 지났던 공원묘지가 눈에 들어온다.
능선길이 시작 되었다(10:02).
능선을 오르며 본 부아산(403m).
`용맥의 품에 안긴 부아의 건아들아'로 시작되는 용인대 정문에 음각되어 있는 문구 중 부아는
이 부아산을 일컫는 것일텐데 이곳에서 보는 負兒山은 애기를 업고 있는 형상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아기를 업은 며느리와 시아바지의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고 한다.
부아산으로 오르는 능선길은 잔설이 덮여 있으나 날씨는 포근하고 바람은 잔잔하다.
부아산 정상에 도착한다(10:24).
조망은 사방으로 비교적 양호하고 나뭇가지 사이로 코리아CC가 눈에 들어온다.
부아산 정상에 서 있는 이정목.
우리는 지곡리 방향으로 진행한다.
이어지는 송전철탑들.
철탑을 따라 오늘 산행은 이어진다.
활엽숫길을 지나고,
소나뭇길도 지난다.
표지기를 보고 질고개로 내려선다.
질고개에서 시내로 이어지는 도로.
여기서도 석성산은 조망된다.
질고개로 내려서서 절개지를 오르기 시작하는 대원들(10:44).
사다리 계단을 올라서 능선으로 접어들면 곧 잡목숲길이 이어진다.
철탑봉(299)으로 올라서는 대원과 휴식하는 선두(11:07).
물 한모금을 마시고 출발해서 직진했야 했지만 좌측 방향으로 내려가는 선두를 무심코 따라가다
길을 잘못들어 20분 가량을 허비했다.
알바하는 줄도 모르는채 묵묵히 길을 가는 대원들,
후미를 따라오며 산행을 지휘하는 회장의 전화로 잘못 든 길을 되돌아 오는 대원들.
철탑봉에서 직진하여 이곳 철탑에 이르러 우측으로 접어 들어야 한다.
산길로 들어서며 다시 본 석성산(11:31).
완만한 산길을 산책하 듯 걷다가 이 봉을 내려서면 42번 도로가 지난다.
42번 도로를 내려서는 대원들(11:50).
아직도 눈이 있는 가파른 절개지를 유격훈련 하듯이 내려간다.
절개지를 내려서서 도로를 건너기 위해서는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는 용인정신병원 앞까지
진행해야 한다.
용인정신병원 앞 신호등.
신호등을 건너서 본 용인정신병원과 지나온 능선들.
신호등을 건너 절개지를 내려섰던 반대편 지점까지 진행하여 산길로 들어선다.
능선으로 올라 붙는다(12:01).
산길을 가며 철탑 너머로 본 용인의 아파트群.
봉우리에 올라서서 배낭을 풀고 각자 준비해온 식사를 하며 잠깐을 휴식한다.
식사를 끝내고 일어서며 보는 석성산.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철조망이 설치된 용인저수펌프장을 끼고 내려간다.
도로 확장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메주고개로 내려선다.
적색 신호등이 켜져 차량들이 멈추는 틈을 이용해 도로를 건넌다.
도로 확장공사 절개지의 사다리를 타고 오른다.
지나온 능선.
산길을 걸으며 좌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용인 열병합발전소.
석성산으로 진행하는 능선길.
통화사로 올라서기 직전의 이정표.
통화사로 들어서지 않고 좌측 포장도로를 따라 오른다.
석성산으로 올라가는 곳곳에 정성스레 쌓은 조그만 돌탑이 줄지어 있다.
3군 산하 통신부대로 오르는 길.
군부대를 바라보고 우측으로 우회한다.
소원성취 재수발원석이 있는 거북약수터는 결빙되어 물은 흐르지 않는다.
석성산을 오르기 직전의 이정표.
잠시 이곳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휴식했다.
통화사 경내 밖에 세워진 석탑이 정교하고 날아갈 듯 날렵하다.
경내의 육화당(六和堂) 현판.
부처님은 우리가 염두에 두어 和를 이루어야 할 여섯 가지 덕목을 설파했는데 그 六和란
첫째 戒和(계화)- 같은 계율을 가짐으로 서로 和同(화동)하고 愛敬(애경)하라,
둘째 見和(견화)- 正法에 의한 正見만을 같이하라,
섯째 利和(이화)- 이익을 균등하게 나누어 가지라,
넷째 身和(신화)- 부드럽게 행동하라,
다섯쟤 口和(구화)- 자비롭게 말하라,
여섯째 意和(의화)- 남의 뜻을 존중하라.
석성산을 향해 오른다.
군부대 산불조심 현수막에서 그들의 奇智를 보고,
주민자치산악회에서 걸어놓은 산불조심 표어를 보며 또 한 번 실소한다.
석성산의 정상부는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그 사이로 玉水가 솟아 흐르고 있었다.
석성산(石城山)은 471.5m로 東緩西急의 형세이며 옛날에는 봉화대가 있었으나 지금은 통신대가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아 군사적으로 天惠의 要塞임을 알 수 있으며 이지역민들은 성산으로
부르고 있다.
2Km에 달하는 石城은 지금부터 약 1500여 년 전인 475년 경 장수왕이 개로왕을 죽이고 쫓기는
백제군을 뒤쫓으며 남하하던 고구려가 이곳을 장악하고 축성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흔적만이 남아 있으며 보개산성이라고도 불린다.
석성산 정상을 오르며 본 강릉방향의 영동고속도로.
일단 안부에 올라서고,
침목계단을 올라
헬기장에 오르니 정상이 보인다.
석성산 정상 도착(14:01).
사방 막힘이 없어 조망이 좋다.
山頂에는 지붕없는 정자와 간단한 운동기구가 있고 조망용 망원경까지 설치되어 있다.
정상에서 본 용인 신시가지의 아파트 군.
정상을 내려선다.
마성쪽으로 직진한다.
능선을 내려서며 본 마성IC.
에버랜드를 홍보하는 설치물이 이국적인 분위기다.
마성(작고개)으로 내려서는 지점에 오석으로 세워진 마가실 서낭(魔姑仙人)표지석.
할미성 원주 대동굿 보존회가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동굿은 온 마을의 주민들이 모여서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펼치는 굿으로 경기도 일대에서
전승되고 있는 도당굿과 같은 형태를 나타내고 있으며 용인 할미성 대동굿은 일반적인 경기도
도당굿의 형태를 보이고 있으나 마을의 풍장패가 길놀이 풍물굿을 먼저 친 다음 他洞에서
동참하기 위해서 오는 풍물을 맞아 들이는 것이 색다른 모습인데 그 규모가 크다고 하여
대동굿이라 부르고 있다.
할미성 도당굿은 용인 석성산 산신령(魔姑仙人)을 받들어 모시고 내려와 모든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여 한마당 대동굿을 펼치는 화합의 굿판으로 용인에 거주하는 무당 전옥기(女)에 의해서
수 년 동안 진행되다가 중단되었던 것을 그의 신아들 남무(男巫) 유성관에 의해 보존
계승되고 있다.(yahoo blog posbackho님의 글에서 발췌함)
터어키 참전비.
1950년 6.25 전쟁에서 전사한 터어키軍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74년 9월 설치했다.
터어키군은 1950.10.17에 참전하여 청천강변 군우리, 용인시 김량장동, 안양 수리산, 의정부,
연천, 퇴계원, 금화등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특히 김량장동 전투(1951.1.25~1.27)에서
백병전을 치루는 용맹한 터어키군의 모습이 UPI 기자에 의해 전세계에 보도되었다고 한다.
작고개(마성)에서 되돌아 본 석성산.
영동고속도로를 무단횡단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이리 잘리고 저리 동강나서 만산창이가 된 정맥길을 지나며 안타까운 심정인데 이렇게라도
마루금을 밟아가야 하는 것인가 자문해 본다.
아무튼 리더의 명령으로 작전을 수행하 듯 영동고속도로를 가로질러 시멘트벽을 뛰어올라
산길로 들어서서 水路를 타고 능선으로 올라간다.
잠시 걸음을 옮기니 돌무더기 같은 할미성이 나타나고 그것을 따라 올라 정상에 선다.
할미산성은 기흥구 동백동과 처인구 포곡읍의 경계에 위치한 할미산(349m)의 정상과 남쪽의
능선 일부를 둘러싼 타원형의 651m에 달하는 테뫼식(산봉우리를 테두리 처럼 빙 둘러서 쌓는 방식)
석축산성으로 붕괴된 성을 고려시대 한 노인이 하룻밤 사이에 쌓았다고 하여 노고성이라고 하며
마고선녀라 불리는 한 노파가 성을 축성하였다 하여 할미성으로도 부른다.
1998년 충북대 중원문화재연구소와 2005년 경기도 박물관 시굴조사 결과 삼국시대 신라에 의해
축성되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내부시설로 수구지, 토광,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고
유물로는 철제류 일부와 신라계 토기류가 주로 채집되어 신라가 한강유역 진출시기인
6~7세기 초에 축조하여 한정적으로 사용한 성으로써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과정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성곽으로 그 가치가 인정되어 2006년 11월 경기도 기념물 제215호로 지정되었다.
(할미성 안내문에서 발췌함)
복원된 듯 보이는 할미산성 일부.
할미성을 내려선다(15:01).
향린마을로 오르는 포장도로와 近遠을 반복하며 철조망을 따라 산길을 올라간다.
향린마을에 올라 본 석성산.
배낭을 내려놓고 잠깐 다리쉼을 한다.
향린촌 뒷편 차량통행이 금지된 포장도로를 따라 88골프장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15:31).
88컨트리 클럽을 우측으로 끼고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향린마을 출입구.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고 사는 곳인 듯 하다.
88골프장 표지판.
용인 동백지구의 아파트 전경.
서울 방향쪽 영동고속도로.
아파트 바로 옆 절개지에 설치된 사다리를 따라 내려간다.
내려서서 본 사다리 계단.
또 영동고속도로 위를 유유히 걷는다.
비상출입을 위해 설치한 철구조물을 타고 영동고속도로를 내려선다.
우여곡절 끝에 오늘 산행 종착지 아차지 고개에 도착한다(16:10).
다음구간 시작점.
영동고속도로 배수로를 올라서며 마루금을 이어갈 것이다.
전사들은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완벽한 작전종료를 자축하지만 나는 웬지 가슴 한구석에 남는
답답함을 지울 수 없었다(16:13).
산행일: 2008. 1. 29. 화요일(4회차)
산행지: 하고개~ 부아산~ 멱조고개(42번 도로)~ 석성산~ 작고개~ 할미성~ 향린촌~ 아차지 고개
날 씨: 대체로 맑고 포근함. 바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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