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나의 생각

시련(試練)의 축복

영원한우보 2006. 7. 23. 18:33

 

아버지와 아들이 사막길을 며칠 째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가도 가도 끝이없는 사막길을 계속 걸어간다는 것은 정말 힘이 들었습니다.

"아버지 얼마나 더 가야 우리가 쉴 수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나요?

이제는 더 이상 걸을 수 가 없습니다."

 

아들의 포기에 가까운 원망에 아버지는 말 합니다.

"얘야 조금만 더 힘을 내어 걸어 가자꾸나. 이제 머지않아 틀림없이 오아시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거야."

 

얼마나 더 걸어 갔을까 무덤이 무리지어 보이자

아들은 다시 말합니다. "아버지 더 이상은 걸을 수가 없습니다.

오아시스는 커녕 죽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가 봅니다."

 

"아들아 이제 정말이지 조금만 더 힘을 내거라.

곧 마을 이 나타나겠구나. 무덤이 있다는 것은 여기서 멀잖은 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겠니?"

 

그렇게 용기를 내어 한참을 가자 그들이 기다리던 오아시스가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여기서 지친 몸을 추스리며 다음길을 준비하여 길을 또 떠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절망과 소망은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우리 인생길은 평탄한 길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험한 계곡을 지나기도 하고

급경사의 고개를 넘어야 할 경우도 있으며 가시밭길이 앞을 가로막고

설때도 있습니다.

 

독수리는 높은 벼랑위에 집을 짓습니다.

거친 나뭇가지를 물어다 밑에 깐 다음 동물의 가죽이나 털을 모아

가시나무 위에 놓고 자기 가슴의 보드라운 깃털을 뽑아 마무리를 한 후

알을 한두 개 낳습니다.

 

 

그리고는 알을 품어 부화시킵니다.

부화한지 일주일 쯤 되면 깃털 등 부드러운 것들을 전부 치워버리고

거친 나뭇가지 둥지를 만듧니다.

그러면 새끼들은 요리 조리 몸을 움직이며 날개를 퍼득거리기 시작합니다.

 

어미는 어린자식을 여기서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날개를 퍼득여 어미날개에 기어오른 새끼를 하늘 높이 날아 오른 후

떨어뜨리기를 반복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어린새끼는 날개에 힘을 기르게 되고

날짐승의 왕자가 되는 것입니다.

 

백로(白鷺)는 5~6개의 알을 낳습니다.

정성스레 품어 부화된 새끼에게 먹이를 주고 보살피는 정성은 백로에게도

인간의 모성본능에 뒤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 어미는 새끼가 날개짓을 하게되면 먹이주는 것을 중단합니다.

너무 비만해져 날 수 없음을 고려한 사랑의 행위라고 합니다.

어미의 깊은 뜻을 헤아리고 참으며 홀로서기를 하는 새끼들은 어미와 함께

높은 하늘을 날아가지만, 거부하고 어미의 사랑만을 계속 받기만을 고집하는

놈들은 그 어미와 같이 하늘을 나는 기회를 잃고 도태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최근에 태풍과 폭우로 온 나라가 난리들 입니다.

모두가 하나되어 위로하며 격려하여 너무나 큰 피해로 신음하는  

이웃들에게 소망을 갖게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시련은 있습니다.

슬픔의 눈물없이는 기쁨을 느낄 수 없으며 기쁨을 모르는 삶에

행복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독수리가 새끼에게 시련을 가하므로써 더욱 강하게 하듯이,

백로새끼가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늘을 날 수 있듯이 우리의 인생도

시련없는, 어려움 없는 인생은 없으며 결코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 밖에 없고 시련은 더 큰 행복을 위한 축복(祝福)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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