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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회복 어디서 시작해야 하나

영원한우보 2005. 12. 27. 00:01

 

왜 이렇게 마음이 허전한가. `큰 바위 얼굴'이 사라져서인가.

인간이 사는 데는 사실만으로 부족하고 신화도 필요하다.

황우석 교수는 불치병 환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신화적 존재였다.

 

그런데 `불 꺼진 창'처럼 그 신화가 깨진 것이다.

지금으로선 황교수 한 사람에게 손가락질 하는 것이 대세다.

하지만 손가락 끝을 보기보다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황 교수에겐 과욕이 있었다. 언제나 앞서가려는 일등주의,

끝없이 무언가를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것이었을 게다.

그의 과속행위는 한국 근대화를 추동했던 `빨리빨리' 정신의

재판이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것은 우리 모두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이심전심으로 요구하지 않았던들, 그가 `오버'하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이제야말로 심호흡을 가다듬는 `천천히 정신'이

필요한 때로, 윤리의식은 물론 절차적 엄정성, 제대로 된 검증 시스템이

작동했어야 했는데....이런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처럼 거대한 돌을 산 정상 위에 올려놓자마자 제무게를

못 이겨 아래로 굴러 내려오는 재앙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영웅은 죽었다. 그러나 `죽은 영웅의 사회'는 안된다.

영웅의 사회는 존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도덕적 펀더멘탈'을 정비해야 한다.

정직함과 신뢰, 반성성, 진정성 같은 것들이 펀더멘탈이다.

이 기반 위에 창의성과 탁월성이 세워졌을 때 비로소

기념비적 업적이 빛을 낼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남의탓'에 열중하기보다 자신을 돌아보며

자성하는 태도다.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가.

백설공주에 나오는 왕비도 거울은 보았으나 남을 의식하는

거울이었다. "누가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가"에만 집착하고 있었던

왕비는 자신의 모습을 허심탄회하게 돌아볼 수 없었다.

 

이번 사태를 놓고 세계가 우리를 어떻게 볼까 하며 실추된

한국의 위상을 걱정하는 것보다 더 절실한 것이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반성하며 그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는 태도다.

우리가 눈물을 흘린다면 남이 한국인을 어떻게 볼까 하는

체면의식보다는 우리 모두 공범이라는 죄책감 때문이어야 한다.

 

지금 이 시각에도 황 교수를 성원하는 사람과 비난하는 사람들로

갈리고 있다. 하지만 그를 지지하건 비난하건 상관없이 중요한

것은 우리는 변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빨리빨리'의 정신, 물불 안 가리고 앞서 가겠다는 조급증,

결과만 내면 된다는 결과주의가 한국인의 원죄임을 인정해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 원죄에 대하여 집단적으로 마음 아파하며 참회할 때

비로소 `껍데기'는 가고 진정한 `큰 바위 얼굴'들이 출현할 것이다.

델릴라의 유혹에 빠진 삼손은 결국 머리를 깍여 힘을 잃었다.

영락없이 머리 깍인 삼손이 된 황 교수도 얼마 후에는 눈까지

뽑힐지 모른다.

 

그를 부추겼던 우리도 그의 신세와 다를 바 없다.

구원의 길은 있는가. 삼손이 눈이 뽑혀 죽게 되었을 때

참회함으로써 괴력을 되찾았다면, 우리도 스스로를 돌아보며

참회할 때 새로운 힘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서울대 중간발표의 날은 한국인 모두에게

`국치일'이 아니라 `참회의 날'일 뿐이다.

 

 

         (박효종;서울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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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추기경은 "한국 사람이 세계에 고개를 들 수 없이 부끄러운

이번 사태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우직하고 정직하게 살자.

이것이 바로 치유책이고 수습책이다'"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