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 바퀴 종주한 적이 있는 서울성곽을 친구들과 함께 탐방에 나선다.
인왕산 선바위, 곡장 부근은 아직도 성곽을 보수중이어서 우회하여 인왕산으로 올라섰고 북악산길은
몇 년 전에 비해 데크 계단이 더 많이 설치되어 있고 비좁아 답답함을 느끼며 올라야 했다.
그러나 백악마루를 내려서면서 숙정문에 이르기 까지 송림이 이어지고 있어 급경사 데크계단을
땀흘려 오른 수고를 보상해 주었으며 오늘 탐사구간의 백미였는데 이제 성곽길은 등산로가 아니라
역사의 숨결을 탐방하는 코스로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서울성곽은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가 개성 수창궁(壽昌宮)에서 한양으로 천도하고 경복궁, 종묘,
사직단의 건립이 완성되자 곧바로 정도전이 수립한 도성 축조 계획에 따라 북악산(342m), 낙산(125m),
남산(262m), 인왕산(338m)을 잇는 59,500자(약 18.2Km) 길이의 성곽을 1396년에 축성한 후
세종 4년(1422년)과 숙종 30년(1704년)에 개보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본래 성곽은 도성을 방어할 목적으로 쌓았지만 정작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서울성곽은 제구실을
하지 못해 선조가 의주로 피난하여 전란으로 인한 피해가 없었으며 숙종은 북한산성까지 쌓고
도성의 방어체제를 정비하였는데 근대사회로 들어오면서 여러가지 이유로 훼손되어 현재는
18.2Km 중 10.5Km 정도만 남게 되었다.
성곽에는 仁義禮智를 상징하는 四大門인 興仁之門(동대문), 敦義門(서대문), 崇禮門(남대문),
肅靖門(북대문)를 세웠으며 그 사이에 四小門인 弘化門(중종 6년에(1511) 惠化門으로 개칭. 동소문),
昭德門(1744년 昭義門으로 개칭. 서소문), 光熙門(남소문), 彰義門(일명 紫霞門. 북소문)을 배치했다.
오늘은 독립문에서 친구들을 만나 인왕산, 북악산, 낙산을 지나 흥인지문까지 성곽길을 걸었다.
다음에 시간을 내서 오늘 둘러보지 못한 코스인 흥인지문에서 광희문을 지나 남산, 숭례문, 돈의문터를
돌아 오늘 시발점까지 탐방해 보려고 한다.
반가운 친구들과 조우하며 또 다른 친구들을 기다린다.
옛날 서대문형무소 자리에 있는 서대문독립공원의 3.1독립선언기념탑 저편으로 안산이 보인다.
인왕산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13:27).
2년 전 쯤 서울성곽을 돌며 빙과를 사먹었던 조그만 구멍가게 옥경이슈퍼는 지금도 건재해 있어
종로구에서 발행한 서울성곽 관광안내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었다.
성곽사진을 보는데 참고가 될까하여 성곽을 탐방하면서 디카에 담은 사진을 먼저 싣는다.
인왕산으로 향하는 왼쪽으로 보수된 성곽이 이어지고 있다.
처음으로 만난 暗門.
우측방향으로 북악산 아래에 청와대가 보인다.
성곽이 이어지고 있는 인왕산 전경.
좌측의 선바위가 있는 곡장 부근은 아직도 성곽을 보수중 이어서 우회했다.
따사로운 햇살이 몸속으로 스며든다.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로 보현봉 주변의 북한산 줄기가 조망된다.
성곽보수가 끝나지 않아 출입이 통제돼 이곳에서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 우회해야 한다.
2~3백 미터 쯤 진행하여 인왕산 호랑이 조각상을 지나고...........
3분 쯤 후 왼쪽의 철문으로 들어서서 계곡을 오른다.
인왕천약수터에서 급한 경삿길을 오르면 능선으로 올라서게 되는데 좌측의 곡장 부근은 성곽보수로
출입할 수 없고 우측의 인왕산 정상부로 성곽을 따라 진행하게 된다.
인왕산으로 오르는 우측의 성곽길.
인왕산을 오르며 뒤돌아 보니 근래에 보수한 하얀 성곽이 곡장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곡장(曲墻)은 구부러진 담장으로 성곽의 일부를 돌출시켜 쌓아 성벽에 접근하는 적을 물리치기 위해
만들었는데 이를 치(雉.꿩)라고도 한다.
꿩(雉)은 위험을 확인하기 위하여 수풀에 몸을 숨기고 머리만 내밀어 밖을 내다보는 습성이 있는데
이런 의미에서 성을 돌출시켜 쌓은 것을 雉라고 하며 이곳 외에 북악산에서 숙정문으로 가다보면
또 하나의 곡장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진행방향 좌측으로 안산도 조망되고........................
이정표가 서 있는 인왕산 정상부에 올라선다(14:10).
정상은 50m 전방에 있고 창의문은 이 지점에서 우측으로 살짝 틀어 내려서야 한다.
정상 바위에 올라선 후 이정표가 서 있는 지점으로 되돌아 오니 창의문 1.6Km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북악산 탐방허용 시간인 3시까지 창의문 안내소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인왕산 정상에 설치된 종로구 경계표지 시설물.
성곽은 우측으로 이어지며 북악산으로 향하게 되고 좌측으로는 기차바위를 지나 홍제동 방향으로
내려서는 길이 있으며 멀리 정면으로 북한산의 산줄기가 펼쳐져 있다.
축조한 시대가 다른 성곽이 잇대어져 있음을 본다.
성곽길을 진행하며 보는 북악산.
성곽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내려서면 포장도로와 만나게 되고 도로를 따라 진행하여 사각정자 부근에
이르면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있고 북악산이 아주 가깝게 조망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바라 본 창의문.
언덕을 내려서서 자하문 사거리 신호등을 건너면 창의문으로 들어가는 골목이 있다.
창의문으로 들어서는 골목길.
북악산 입산은 창의문안내소와 말바위안내소에서 통행표찰을 교부받아 오후 3시 이전에 통과해야 하며
매주 월요일에는 북악산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창의문(彰義門)은 四大門인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의 北小門으로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한다'는 뜻을
가진 문으로 북소문으로 불린 적은 없으며 이곳 계곡의 이름을 빌려 자하문(紫霞門)이라는
별칭으로 불려오고 있다.
성곽안으로 들어서서 본 창의문.
창의문 안내소에서 출입신청서를 작성하여 신분증과 함께 제출하고 표찰을 교부받아 북악산길을
탐방하게 되며 숙정문을 지나 말바위 안내소에서 표찰을 반납할 때까지 사진촬영이 제한되고
음주를 할 수 없는 등 보안상의 제약이 뒤따르게 된다.
紫霞門에서 北岳山으로 오르는 바른 길(正道?)을 걷는다.
북악산까지 상당히 가파른 계단길이 이어진다.
성곽너머로 비봉능선이 우측방향으로 이어지고 분기한 형제봉 능선이 계속해 흘러 내리고 있다.
성곽길에서 우측으로 약간 비켜나 있는 北岳山(표지석에는 白岳山.342m로 표기됨)에 올랐다(15:24).
북악산은 白岳, 白岳山, 백악마루 등으로도 불린다.
북악산 정상바위 앞에 선 친구.
북악산 정상에서 줌을 당겨 본 지나온 인왕산.
성곽이 이어지고 있고 우측으로 기차바위가, 좌측 너머에는 안산이 보이고 있다.
백악마루를 내려선다.
북한산 줄기가 하늘금을 그리고 있고 시대별 성곽의 보수흔적이 흥미롭다.
암문을 통해 성안으로 들어서서 좌틀하면 송림이 이어진다.
소나뭇길은 숙정문을 지나 말바위 안내소에 이르기 까지 이어져 탐방길의 정취를 더해주고 있는데
풍수학자인 최양선(崔揚善)이 "창의문과 숙정문은 경복궁의 양팔과 같으므로 길을 내어 지맥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건의하여 두 문을 닫고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였다고 한다.
곡장에 올랐다가 되돌아 나오면서 지나온 북악산을 조망한다.
숙정문으로 이어지고 있는 소나뭇길.
숙정문(肅靖門)에 이르렀다(15:58).
본래 숙정문은 사람들의 출입을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서울성곽 동서남북에 4대문의 격식을 갖추고
비상시에 사용할 목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평소에는 굳게 닫아 두었다고 한다.
말바위안내소에 이르러 표찰을 반납하고 길가 공터에 둘러앉아 북악산 통제구간에서 처리하지 못한
막걸리 몇 병을 친구들과 나누어 마시고 다시 성곽을 따라 걷는다.
성곽밖으로 진행하여 와룡공원에 이르고,
성곽을 따라 계속 고도를 낮춘다.
서울성곽 안내문.
서울과학고 뒷쪽에 이르면 성북동과 혜화동을 잇는 도로가 성곽을 단절해 놓고 있으며 길 건너에는
돈가스를 파는 식당 우측으로 경신고등학교 담장과 건물이 보인다.
서울왕돈가스 골목으로 들어서면 경신고등학교 담장이 이어지는데 서울성곽이 학교담장에 깔려 있다.
문화재 보호관리에 너무나 무관심했던 현장을 지난다.
먹고살기 힘들어 여유가 없었다고 항변하고 싶지만 역사유물을 보존하여 세계에서 엄청난 관광객을
불러모아 국부의 수십 %를 관광수입으로 벌어들이는 유럽국가들을 보면 우리의 근시안적 태도가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를 실감하게 되며 뿌리를 잘라내 말라 죽은 고사목을 보는 듯 하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이어갈 학생들은 창밖으로 이런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까?
경신고등학교 정문을 지나 주택가를 진행한다.
교회의 담장에서도,
주택가 담벼락에서도 서울성곽의 신음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서울 중심가의 또 다른 모습.
공간의 크기만을 자랑하는 건물에 떠밀려 한쪽 구석에서 천막을 뒤집어 쓰고 방치된 듯한 이 모습이
개발의 기치를 치켜들고 뒤돌아 볼 틈도 없이 달려온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어느덧 혜화문이 앞으로 다가선다(17:02).
철문을 통해 혜화문으로 올라선다.
좌측으로 돌아가면 현판이 달려 있는 혜화문을 볼 수 있다.
성루에 올라선 후 우측 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혜화동에서 삼선교 방향으로 이어지는 대로와 만난다.
끊겨진 성곽은 도로 건너편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혜화문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기록된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다.
도로 건너편에는 얼마 전까지 없던 성곽으로 오르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한성대역으로 들어가 4번 출구로 나와 2~3십 미터 쯤 진행하면 성곽으로 올라서는 계단이 있다.
성곽으로 올라서는 계단 바로 옆에는 하필 고물상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대로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국내외 관광객에게 보여주는 서울성곽의 이미지를 고려하는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계단을 오르며 건너다 본 혜화문.
이렇게 성곽은 이어지고 있다.
뒤돌아 본 성곽길.
혜화문을 건너서 흥인지문에 이르는 구간이 비교적 원형보존이 잘되어 있는 지역으로 생각된다.
성곽을 따라 약 15분 쯤 진행하면 암문이 나타나고 암문안으로 들어서면 낙산공원이다.
낙산공원에서 잠시 시내를 조망하며 휴식한 후 길을 진행한다.
낙산공원을 빠져나와 우측으로 꺾어 성곽을 따라가면 흥인지문에 이르게 된다.
성곽길을 따라가다 보면 남산이 보이고 좀 더 진행하면 개인적으로 6년의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을 보낸
모교 자리에 개발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두타건물이 우뚝 서 있다.
낙산공원에서 내려서며 처음으로 암문을 만나고,
약 5분 후 다시 두번 째 암문을 지나게 된다.
흥인지문 앞에 이르렀다(17:54).
끊겨진 성곽을 뒤돌아 본다.
각자성석(刻字城石)에 디카 줌을 당겨보니 성을 개축한 시기와 책임자들의 실명이 뚜렸하다.
강희(康熙) 45년 4월 개축했음이 각자되어 있고,
이 일대의 개축에 참여한 훈국 십인(訓局 十人)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흥인지문(동대문)은 보물 제1호로 조선 태조 7년(1398)년 도성의 4대문 중 하나로 동쪽에 건축했는데
지금의 모습은 고종 6년(1869)에 다시 지은 것으로 興仁之門에 들어간 갈지 자(之)는 낮은 땅의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고종 때 다시 지으면서 써넣었다고 하며 서울의 성문 중 유일하게 옹성(甕城)이
반달 모양으로 둘러져 있다.
성곽 탐방을 마치고 청계5가 부근의 뒷풀이 장소로 이동했다.
닭한마리 간판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이는데 외국 관광객도 이곳을 많이 찾는 듯 했으며 성업중 이었다.
친구들과 오랫만에 만나니 즐겁고 반가웠지만 음식값도 함께 지불하지 못하고 손님대접을 받고 있는
내가 심히 부끄럽고 잘 못 살아오지는 않았는가 하는 마음이 무겁게 짓누른다.
⊙탐방일시: 2011. 2. 26(토요일).
⊙탐방구간: 인왕산 입구(옥경이 슈퍼 앞)~ 인왕산~ 창의문~ 북악산~ 숙정문~ 와룡공원
~ 혜화문~ 낙산~ 흥인지문(동대문).
⊙날 씨: 대체로 맑고 따스함. 조망 양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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