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온세상이 하얗다.
어제 천 미터 가깝게 고도를 낮춰 하룻밤을 푹 자고 일어난 일행들은 평소 컨디션을 회복하여
활기를 되찾은 데다가 창조주는 지난 밤 온대지에 눈을 뿌려 은백세상으로 장식해 놓고
우리를 설국으로 초대하고 있으니 신의 은총에 두팔 벌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휘몰아치는 바람과 싸워가며 지나왔던 북쪽방향의 페리체 평원은 모든 영욕을 눈으로 덮은 채
물길만이 그들의 자취를 만들고 있었고 햇살에 반사되는 설산들은 환상을 연출하고 있었다.
오늘 진행 할 남쪽방향으로 보이는 만년설산 탐세르쿠와 캉테가는 속세와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 채
늠름한 근육질을 드러내며 우리를 유혹하고 있었다.
어제까지 EBC를 오르내리며 3일 동안 머물렀던 페리체 리조트 지붕에는 10Cm가량의 많은 눈이
수북하게 쌓여있고 지붕 위로는 고소적응을 위해 올랐던 민둥산이 하얀 눈을 덮어쓴 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우리를 묵묵히 내려다 보고 있었다.
우리는 들뜬 기분으로 아침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은백의 설원 트레킹을 시작한다(08:08).
일행들의 뒤를 따르며 바라보는 설경은 가히 영화속의 한 장면 처럼 숨막힐 듯 아름다워 온몸에
흐르는 전율로 소름이 돋아나고 있었고 살아 숨쉬는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페리체 마을을 뒤돌아 보니 어젯밤 천지가 재창조 된 듯 너무나 순결하고 눈부신 풍경이 너저분한
생각으로 가득찬 가슴에서 숨을 토해내기가 송구스런 마음이 든다.
은백의 설원을 트레킹 하면서 살아 있음에 감사했고 행복을 만끽한다.
EBC트레킹을 하는 동안 쿰부히말은 궂은 날씨가 하루도 없었고 저녁에 살짜기 내린 눈은 다음 날
트레킹하는 주변의 풍경을 멋지게 연출하며 힘들어 하는 우리를 격려하고 있었다.
사방으로 펼쳐져 있는 설산을 바라보며 천상의 세계를 걸어간다.
우리는 쿰부히말의 계곡과 언덕을 넘어 속세를 향해 나아간다.
페리체 패스(Pheriche Pass)의 막바지 오름길을 진행한다.
페리체 부터 따라 나선 검둥이들이 우리와 이별이 아쉬운 듯 함께 언덕을 오른다.
발걸음을 멈추고 기념을 남긴다.
언덕에 올라섰다(08:42).
바람은 고요하고 사방으로 펼쳐지는 설경이 황홀하다.
모두들 환호성을 연발하며 감동을 억제하지 못한다.
이리저리 셧터를 눌러대며 흔적을 남긴다.
일행 모두가 모여 기념한다.
아마다블람은 은백의 속세를 굽어보고 있었다.
페리체 패스를 거슬러 오르쇼(Orsho)를 향하며 고도를 낮춰간다.
백만송이 아니, 억만송이 설화가 만발한 길이 이어진다.
야크들의 발걸음이 여유롭다.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본다.
고소적응을 위해 올랐던 페리체 뒷산이 운무를 벗고 모습을 드러낸다.
설봉 사이로 머리를 내민 눈덮인 암봉이 스핑크스의 모습이다.
만년설에 덧칠된 설봉들은 컷팅을 하기 전의 원석처럼 찬란하다.
우리는 그 곁을 지나며 고도를 낮춘다.
은백의 설국에 보잘것 없는 내몸을 맡긴다.
Orsho 마을 어귀에서는 또 한무리의 야크들이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도 에베레스트를 향하는 발걸음은 이어진다.
은백의 설원을 지나며 Orsho(건물벽에는 Orshyo로 표기되어 있음) 마을의 선라이즈 게스트 하우스를
휴식없이 지나친다(09:23).
에베레스트 계곡을 따라 소마레로 향하는 걸음은 계속된다.
소마레 마을을 지난다(09:37).
아마다블람을 뒤돌아 본다.
우렁찬 소리로 흘러 내리는 에베레스트 계곡을 따라 진행한다.
고도를 낮춰가자 적설량은 눈에 띄게 적어지고 따스한 날씨로 맨땅이 드러나 아이젠을 벗는다.
주변은 수묵산수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팡보체로 진행은 계속된다.
팡보체 마을로 들어선다.
팡보체 에베레스트 롯지에 배낭을 풀고 휴식한다(10:34).
이글을 쓰기 며칠 전 산악인 엄홍길씨가 에베레스트를 같이 오르다 운명을 달리한 이고장 출신의
세르파인 도르제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초등학교를 지어 헌납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에베레스트 롯지는 이름에 걸맞게 에베레스트 설봉들이 주변에 포진하고 있다.
롯지 바로 뒤로는 타부체가 룽다르와 함께 보이고,
좌측으로는 아마다블람, 캉테가, 탐세르쿠가 이어지고 있었다.
잠시 휴식을 마치고 고도 4천 이하의 등로를 진행하여 디보체로 향한다(11:21).
설산 꽁데 아래의 언덕에는 텡보체가 자리잡고 있다.
편안한 하산길을 약 15분 정도 진행하면 다리를 건너게 된다.
다리를 건너 계곡을 우측에 끼고 진행하게 되는데 응달에는 녹지 않은 눈이 미끄럽다.
질퍽거리는 길은 디보체 마을로 이어진다.
디보체 파라다이스 롯지에 도착했다(12:10).
파라다이스 롯지는 우리가 에베레스트로 올라가며 묵었던 곳인데 시설이 허술하여 침낭을 적시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오늘은 주위에 펼쳐지는 풍광이 근사하다.
점심식사를 기다리며 차 한 잔 마시는 주변의 분위기는 정말 환상이었다.
여유롭게 식사를 마친 우리는 하산을 재개한다(13:31).
랄리구라스 군락지를 지난다.
디보체 마을을 떠난지 25분 餘만에 사원이 있는 텡보체에 이른다(13:57).
잠시 휴식 후 트레킹은 또 시작된다.
가파른 내림길을 진행하여 고도를 낮춰간다.
캉테가 정상의 강아지는 아직도 운무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풍기텡가를 지나간다(15:07).
곧 계곡을 건너는 다리를 만나게 된다.
다리를 건너 오름길을 잠시 진행하여 돌아가면 라사사(Lausasa)마을로 접어드는데 동네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그들의 터전을 보수하고 있었다.
햇살이 따사로운 롯지뜰에 나와 바느질을 하고 있는 아낙의 평화로운 모습을 발길을 멈춘 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며 우리의 삶을 돌아본다.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트레킹은 진행된다.
공부를 마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귀가하는 아이들을 만났다.
그들의 얼굴에서 그늘은 찾아볼 수 없다.
상나사(Sangnasa) 롯지를 지나면 고쿄(Gokyo)와 쿰정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에 이르고 우리는
남체방향으로 진행하게 된다.
오늘 묵어 갈 캉주마의 아마다블람 롯지에 도착했다(16:49).
여덟 시간 半 이상을 걸어 이틀간 올라갔던 길을 하룻만에 내려왔다.
이제 고소적응이 되어 내려오는 길은 국내산행을 하는 것 처럼 수월해져 있었다.
운무가 설산 주변을 맴돌며 은백의 설원을 넘어온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제11일차 여정: 페리체(4,240)~ 소마레(4,010)~ 팡보체(3,930)~ 디보체(3,820)~ 텡보체(3,860)
~풍기텡가(3,250)~ 캉주마(3,550)
트레킹 날씨: 맑은 후 차차 구름 많아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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