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에 나홀로 서울의 고궁을 찾았다.
우산쓰고 창덕궁과 창경궁을 넘나들며 공짜관람을 만끽했다.
추석날 밤.
안국역 하차 3번 출구.
현대빌딩 앞.
아라리오 뮤지엄.
사적 제122호인 창덕궁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5대 궁궐 가운데 기장 자연스런 모습을 하고 있는 창덕궁은 1405년(태종 5년)에 지어져
광해군 때부터 정궁으로 사용되었고 화재로 수 차례 중건하였으며 창경궁과 이어져 있고
뒷쪽에 후원이 조성되어 있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태종 12년(1412)에 건립된 돈화문은 2층 누각형 목조건물로 궁궐 대문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며
앞에 넓은 月臺를 두어 궁궐의 위엄을 갖추었는데 보물 제383호로 지정되었다.
돈화문 안마당 좌우의 여덟 그루 회화나무는 천연기념물 제472호로 지정되어 있다.
금천교를 건너 진선문으로 들어서게 된다.
금천교는 돈화문과 진선문 사이를 지나가는 명당수 위에 창덕궁 창건 6년 뒤인 태종 11년(1411)에
설치되었는데 그 후 숱한 화재와 전란에도 불구하고 창건 당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어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돌다리로 꼽히며 궁궐의 위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조각상과 아름다운 문양,
견고하고 장중한 축조기술 등이 돋보이는 이중 홍예로써 역사적, 예술적, 건축적 가차가 뛰어나
보물 제1762호로 지정되었다.
진선문.
진선문을 들어서면 인정문과 숙장문이 보인다.
인정문(보물 제813호)은 창덕궁 중심 건물인 인정전의 정문으로 효종, 헌종, 숙종, 영조 등 조선왕조의
여러 임금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왕위에 올랐다.
인정문에서 바라 본 인정전.
인정전은 창덕궁의 正殿으로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중요한 국가 의식을
치르던 곳으로 마당인 朝廷이 펼쳐져 있고 뒷쪽으로는 북한산의 응봉으로 이어져 있으며 국보 제225호로
지정되었는데 월대의 높이가 낮고 난간도 달지 않아 경복궁의 근정전에 비해 소박한 모습이다.
인정전의 일월오봉도.
일월오악도, 일월곤륜도, 오봉병이라고도 불리우는 일월오봉도에는 음양을 뜻하는 해와 달이
그려져 있는 바 이는 왕과 왕비를 상징하고 그 아래 다섯 개의 산봉우리는 동,서,남,북,중앙의 다섯 산을
가리키며 국토를 의미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임금이 중앙에서 사방을 다스리고 음양의 이치에 따라
정치를 펼친다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선정문.
선정전은 왕이 고위직 신하들과 함께 일상 업무를 보던 공식 집무실인 便殿으로 지형에 맞추어 인정전
동쪽에 세워졌는데 현재 궁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청기와 건물로 보물 제814호로 지정되었으며 뒤편의
희정당으로 편전 기능이 옮겨 가면서 순조 이후에는 죽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魂殿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선정전의 일월오봉도.
선평문.
대조전은 보물 제816호로 지정되어 있는 바 창덕궁의 정식 寢殿으로 왕비의 생활공간이었으며 주변에는
수많은 부속건물들이 에워싸고 있는데 그 중 흥복헌은 1910년 마지막 어전회의를 열어 경술국치가
결정되었던 비극의 현장이다.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려 경술국치가 결정되었던 흥복헌.
희정당은 왕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실질적인 중심 건물로 원래 이름은 숭문당이었으나 1496년(연산 2)에
희정당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편전인 선정전이 비좁고 종종 혼전으로 쓰이면서 침전이었던 희정당이
편전의 기능을 대신하게 되었는데 보물 제815호로 지정되어 있다.
아! 가을인가!!!
헌종의 애뜻한 사랑이 담겨 있는 낙선재 전경.
낙선재로 들어서는 장락문.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은 김재청의 딸을 慶嬪으로 맞이하고 1847년(헌종 13)에 낙선재를, 이듬해에
석복헌 등을 지어 수강재와 나란히 두었는데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겸 사랑채였고 석복헌은
경빈의 처소였으며 수강재는 당시 대왕대비인 순원왕후(23대 순조의 왕비)을 위한 집이었다.
헌종은 평소 검소하면서도 선진 문물에 관심이 많았는데 낙선재는 단청을 하지 않아 소박한 모습을
지녔으며 석복헌에서는 순종의 비 순정효왕후가 1966년까지 기거하였고 낙선재에서는 영왕의 비
이방자 여사가 1989년까지 생활하였으며 2012년 보물 제1764호로 지정되었다.
낙선재 주변의 모습.
순종의 비가 기거했던 석복헌(錫福軒).
수강재(壽康齋).
한정당(閒靜堂).
낙선재를 나와 창경궁으로 간다.
창덕궁과 창경궁을 넘나드는 함양문.
창경궁으로 들어섰다.
풍기대와 앙부일구.
성종 태실과 태실비.
춘당지.
팔각칠층석탑.
대온실.
백송.
옥천교.
모든 궁궐 마당에는 냇물이 흐르는데 이는 법전이 있는 궁궐의 안쪽과 외부 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며
궁궐 뒸쪽의 산과 짝을 이루어 좋은 운을 불러들이는 길지가 되라고 일부러 낸 물길로 이를 금천이라
부르는 바 창경궁의 금천은 옥천이라 부르고 여기에 넣인 다리가 옥천교다.
회화나무.
창경궁의 노거수들.
명정전.
명정전은 임진왜란 후 광해군이 창경궁을 중건할때 지은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데 단층 지붕에
아담한 규모이지만 궁궐의 정전 가운데서는 가장 오래되었으며 주위에 왕이 일상 업무를 보았던 문정전과
독서하거나 국사를 논하던 숭문당이 자리잡고 있다.
명정전의 일월오봉도.
왕이 일상 업무를 보던 문정전.
왕이 독서를 하거나 국사를 논하던 숭문당.
궁궐의 풍파 세월을 묵묵히 지켜 보던 주목.
경춘전과 환경전.
경춘전은 정조와 헌종이 태어난 곳이며 혜경궁 홍씨가 승하한 곳이다.
양화당과 통명전.
통명전.
통명전은 왕비의 침전으로 내전의 중심이 되며 공간과 규모가 큰데 주변에는 경춘전과 집복전 등
후궁의 처소로 쓰이던 여러 전걱들이 모여 있으며 희빈 장씨가 통명전 일대에 흉물을 묻어 숙종 비
인현왕후를 저주하였다가 사약을 받은 곳으로 유명하다.
명정전.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을 둘러 본다.
홍화문.
왕이 백성을 만나는 일이 흔치 않았던 조선시대에 홍화문 앞에서 영조는 균역법에 대한 찬반여부를
백성에게 직접 물었고 효심 깊은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여 백성에게 손수
쌀을 나누어 주며 기쁨을 함께 했다.
다시 창경궁을 거쳐 창덕궁을 통해 안국역으로 간다.
현대빌딩 앞에 있는 관상감 관천대.
♣관람일시: 2019. 9. 14(토요일).
♣관람지역: 창덕궁, 창경궁.
♣관람날씨: 흐리고 비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