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산행및 트레킹/중국산행및 관광

호도협, 옥룡설산 트레킹(4)- 여강고성의 晝夜風景과 萬古樓.

영원한우보 2011. 5. 27. 01:12

 

이번 여행에서 여강고성을 두 번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한 번은 호도협 트레킹을 마치고 여강으로 돌아와 저녁에 여강고성 야경을 관광했고

여강을 떠나는 날 흑룡담공원을 돌아본 후 여강고성과 주변의 사자산 만고루,

여강재래시장을 구경하고 중경으로 이동했다.

 

여강고성(The old town of Lijiang)은 옥룡설산의 눈 녹은 물들이 여강시내로 흘러들어

흑룡담으로 모였다가 여강고성 구석구석에 놓인 300餘 개의 크고 작은 다리 아래를

지나고 있어 동양의 베니스로 불리고 있으며 면적 약 3.8㎢에 3만 명의 원주민이

거주하면서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宋나라 때부터 생겨난 여강고성은 다리와 마을을  굽이굽이 흐르고 있는 물, 푸르른 나무,

한족(漢族), 장족(藏族), 바이족(白族) 등 여러 民俗을 융합한 나시족 전통의 가옥들이

어우러지며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풍경이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잘 간직하고 있고 

소수민족인 나시족의 생활상을 비교적 소상하게 엿볼 수 있게 한다.

 

마을 중심인 시팡지(四方街)는 명청(明淸)시대 부터 서북의 茶 등 상업무역의 중심지였으며

시팡지의 길바닥은 닳고 닳은 붉은 색 우화슬(五花石)이 깔려 있어 거리의 아름다움이

돋보이고 마을안으로 흘러드는 강물은 3갈래로 가장 윗줄기는 마시는 물로 사용되고,

중간의 물줄기는 밥짓는 물로, 가장 아래의 물줄기는 빨랫물로 사용한다고 한다.

 

1996년 지진으로 고성의 상당부분이 훼손되었으나 강택민 전 중국 주석이 직접 방문하여

복원및 보존을 지시하여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매년 수백만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관광명소가 되어 많은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

 

특히 여강에는 소수민족 중의 하나인 나시족이 많이 살고 있는데(약 30만 명) 이 민족이

사용하고 있는 문자는 세계에 마지막으로 현존하는 동파 상형문자(東巴 象形文字)로

리지앙 곳곳에는 간자체와 함께 병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강고성(Old town of Lijiang) 입구의 간판이다. 

나는 여강고성을 방문하는 그날까지 old castle(城廓)인줄 알고 있었다.

 

여강고성은 164개의 골목과 354개의 크고 작은 수로와 다리가 거미줄 처럼 연결되어 있는데

이곳이 그 시발점이다.  

 

`世界文化遺産 麗江古城 '

강택민 전 주석의 친필이라고 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기념하는(?) 벽 부조물.

 

고성의 홍등가(紅燈街) 모습. 

수로에 비추이는 황홀한 조명 만큼 무희들의 몸짓도 현란(絢爛)했다.

  

 

 

어여쁜 호객소녀와 함께...................... 

 

홍등가를 배경으로....................  

 

각종 기념품과 상품들을 파는 가게들.

파는 물건은 요즈음 것들 이지만 건물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다.  

 

모수오족(摩梭族. Mosuo)의 手工織組 모습. 

 

여강고성의 `전국문명풍경여유구' 안내석. 

 

고성야경을 배경으로...................

밤 10시가 훌쩍 넘었는데도 고성은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시팡지의 길바닥에 깔려 있는 돌은 예전부터 오가던 말발굽과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닳고 닳아서

비에 젖은 돌이 무척미끄러웠는데 달가닥거리는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아름다운 고성야경.  

 

고성야경 관람을 마치고 나서며 일행들과 .............................

 

이틀 뒤 낮에 흑룡담공원을 들렀다가 다시 찾은 여강고성.

 

여강고성 물레방아 앞에서................. 

물레방아는 천천히, 그러나 여유롭게 돌고 있었다.

 

동파문자로 소원을 기록한 목풍령(木風鈴)을 매달며 간절한 소망을 염원한다.

 

물레방아 두 개가 맞물려 돌아간다.

이곳에서 물길은 東河, 中河, 西河 세갈래로 나뉘어 좁은 수로를 통해 생활용수를 공급하며

고성내부로 흐르는데 나시족들의 도시설계기술과 물을 아끼는 지혜가 돋보인다.

오늘날 동양의 베니스, 수향고성(水鄕古城)이라 불려지기도 한다.

 

여강고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기념 조형물. 

골목안으로 들어서면 야간에 불야성을 이루는 홍등가로 이어진다.

 

 

수로를 따라 잔잔히 흐르는 물, 늘어진 수양버들과 어우러진 홍등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광란으로 밤을 새웠던 홍등가의 아침은 평온을 되찾아 적막마져 흐른다.

 

별나지 않게 그러나 정성을 기울여 가꾸고 정돈한 거리에서 정감이 묻어난다. 

 

종종 영화촬영을 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고성을 유유자적 거닐고 있는 나시족 할멈들은 우리가 선호하는 사진모델이다.

 

고성 거리의 수양버들과 잘 가꾸어진 화분들.

뻣뻣하지 않고 부드럽게 늘어진 수양버들의 모습이 자기 스타일을 강요하지 않고 서로가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이곳 소수민족들의 삶을 닮은 듯 하다.

 

신비의 여인국(女人國) 모수오족(摩梭族)의 원색적인 수공품 가게.

모수오족의 父系는 티베트족(藏族), 母系는 리장의 소수민족인 나시족(納西族)으로 윈난성 서북쪽,

쓰촨성과 경계지역인 한폭의 그림같은 루구호(瀘沽湖) 주변에 약 4만 명 가량이 살고 있는데

지금도 모계사회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남여가 각자 모친집에서 기거하면서 사랑 할 때만 여성의 집을 찾으며 낳은 아이들은

어머니가 키우는데 경제적으로 부부는 각기 독립적인 생활을 하여 아버지를 모르고 자라

모수오족은 `아버지'라는 단어가 없으며 오직 어머니란 개념만 존재한다.

 

모든 경제권과 결정권은 집안의 가장 연장자인 어머니나 할머니가 행사하고 남자 형제들은

집안일과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지구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가족제도를 가지고 있으나 공식적으로 소수민족에 분류되지 않고 있다. 

 

 

원형이 잘 보존된 전통건물에 상점들이 즐비하다.

 

 

광장을 일컫는 시팡지(四方街. Sifangjie)의 풍경이다.

사진 왼쪽으로 오르면 만고루가 있는 나즈막한 사자산으로 가는 길이고 우측에는 우리가 점심을 먹은

금옥화앵(金屋花櫻) 음식점(한국인 부인과 중국인 남편이 사장임)이 있는 음식점 골목이다.

 

말을 타거나 독수리를 팔에 올리고 기념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내야 한다.

 

 

 

사자산에 오르면 여강시내가 전체적으로 조망될 뿐만 아니라 옥룡설산이 그 자태를 온전히 드러낸다.

만고루로 향하는 골목을 따라 오르며 그들의 일상을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손으로 직접 그리고 덮입혀 공예품을 만들고 있는 匠人의 표정이 진지하다.

 

彫刻刀를 사용하여 수작업으로 목공예품을 만들고 있는 가게를 지난다.

완성하여 진열한 목공품의 정교함이 놀랍다.

 

파라솔 대신 우산을 받쳐 쓰고 한줌의 앵두와 딸기를 팔고 있는 아낙네.

이렇 듯 그들의 생활상은 우리 어렸을 때를 회상케 한다.

 

그들의 전통의상 색상은 화려하다. 

 

또 다른 분위기가 풍기는 그림을 수놓은 소품들.

 

 

서울의 남산같은 사자산 입구이다. 

 

 

여강시내와 옥룡설산을 조망하기 위해 사자산으로 들어섰다. 

 

여강고성 사자산 觀景臺.

아무리 둘러보아도 성곽의 흔적이 없다.

이곳 여강은 木氏가 오랫동안 다스렸는데 목(木)둘레에 네모난 성곽(ㅁ)을 둘러싸면 곤란할 곤(困)자

모양이 되기 때문에 성을 쌓지 않았다고 한다.

 

사자산 전망대에서 옥룡설산과 象山을 배경으로................

지진이 일어 났을 때 신시가지의 근래에 지었던 건물들은 거의 무너졌지만 이곳 전통가옥들은

이렇게 완전하게 원형을 보존하고 있어 세계각국 건축가들의 관심이 지대했다고 한다.

 

여강의 구시가지 풍경. 

오른쪽의 짙은색 커다란 누각들이 목씨들의 관청이었던 목부(木府)이다.

 

 

사자산 정상부에 우뚝 서 있는 6층의 목조건물 만고루에 오른다.

  

 

만고루에 올라 바라 본 옥룡설산과 여강의 신시가지. 

지진이 잦은 이곳에서 중경에서 본 고층건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고층건물이 앞을 가렸다면 뛰는 가슴으로 옥룡설산을 바라볼 수 없었을 것이다.

 

 

만고루 천장화. 

 

사자산을 내려오며 다시보는 골목풍경. 

 

연탄화덕에 꼬치구이 등 제법 다양한 간식거리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인 부인과 중국 남편이 운영한다는 금옥화앵(金屋花櫻)에서 韓食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주인은 식당을 운영해서 많은 돈을 벌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색동치마 저고리 차림으로 우리에게 茶를 서빙했던 처녀.

 

식사를 마치고 금옥화앵을 나왔다.

수로를 따라 음식점이 이어지는 한켠에서 노파는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야외촬영(?)을 하는 아가씨 표정이 무척 행복해 보인다. 

 

수로를 따라 음식점은 이어지고...........................

 

분위기 연출을 위해(?) 골목마다 홍등이..................

 

운남성의 명물인 보이차 상점에 들렀다. 

보이차는 운남성의 특산물로 서쌍판납, 사모, 림창, 보산 등 여러 곳에서 생산되는데 보이지방에

모아져 출하되기 때문에 보이차로 불리게 되었는데 보이차는 한국식 표현이고 실제로는

푸얼차(Puer Tea)라고 표기하는 것이 맞다고 한다.

 

 

동파(東巴)는 그 자체로 동파교의 제사장을 일컫는다.

나시족 말로 `지혜로운 스승, 큰 스승'이란 뜻이며 관광객들에게 포즈를 취해주고 사례비를 받는다.

 

그들의 표정은 늘 순진하고 평온하다.

 

현존하는 세계 유일의 동파 상형문자벽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여강고성의 곳곳에 이런 상형문자 문자벽이 설치되어 있고 간판마다 중국의 간자체와 병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전통문화를 이어가려는 그들의 뜻깊은 노력이 가슴에 와 닿는다.

 

한국 음식점 구원각의 간판에는 동파 상형문자와 영어가 병기되어 있다.

ㄱ이 아홉개이니 구(九)를 뜻하며, 원(源)은 좀 고차원적으로 표기되었고, 각(閣)은 집모양을

나타내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관청을 드나드는 출입구(?)라는 官門口를 빠져 나간다.

 

고색창연한 전통건물 상점들이 이어지고...................

 

목부(木府)의 일부인 천우류방(天雨流芳)을 지난다.

 

천우류방 전통건물들 사이로 멀리 보이는 象山.

 

목부(木府)앞에 이르렀다.

나시족의 세습족장 목씨는 원, 청, 명에 걸쳐 22대 470년이란 세월을 통치하였으며 명조 때 제일

번성하였는데 고성안의 목부는 본래 여강의 목씨 관공서로 원나라(1271년~ 1368년)에

건설되었다.

 

목부는 청나라 말기 전쟁으로 인해 훼손되었고 1998년 재건된 후 府內에 고성박물관을 설립했는데

築線에 따라 천우류방(天雨流芳), 패방, 충의방(忠義坊), 의문(儀門), 의사청(議事廳), 만권루

(萬卷樓), 호법전, 광필루 등 15채에 162칸의 크고 작은 방이 있으며 그 안에는 역대 황제가

하사한 11개의 편액이 걸려 있어 木氏家 榮華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목부를 방문했던 서하객(徐霞客. Xu Xia Ke)의 문구가 적혀 있다.

궁실지려 비어왕자(宮室之麗 批於王者): (족장의 집인)궁실의 화려함이 왕과 견줄만 하구나.

서하객은 1586~1641년을 살았던 중국지리 전문가이자 여행가였는데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여행과

문학으로 살았으며 이름은 홍조(弘祖), 호는 하객(霞客)이다.

 

목부 주변의 개축된 전통가옥들.

 

여강고성에서 이 골목을 지나면 여강재래시장으로 이어진다.

 

♧관광일정(5/3): 여강고성 야경.

               (5/5): 흑룡담~ 여강고성~ 만고루~ 여강재래시장~ 중경 인민대례당과 조천문.

 

P.S. 여행기 설명을 위해 타인의 사진이 일부 사용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