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대를 넘어 팔봉능선을 가다
오늘은 삼각산행이 계획되었으나 잡작스런 개인들의 사정으로
취소되어 나홀로 관악산으로 방향을 잡고 느즈막하게 집을 나와
사당역에 정오가 넘은시간에 도착했는데 정상을 경유하여 팔봉
능선을 지나서 삼성산에 오른 후 안양유원지로 내려오는조금은
버거운 계획을 세웠다.
사당역 4번 출구로 나와 남태령 방향으로 삼사백 미터를 걸으니
약간의 오르막이 시작되는 지점에 관악산으로 가는길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있다.
안내판을 보며 오른쪽으로 돌아 남현동 마을의승방길을 10분가량
걸으면 동네 끝자락에 이르고 조그만 다리를 건너서 관악산으로
오르는 길이 나타나고,
다리를 건넌 후 몇 십 미터를 걸어가다 우측 산길로 들어서면 본격적인
관악산 산행이 시작된다.
관음사를 좌측으로 보며 연주대 방향으로 10여 분을 오르니 높은
암봉이 막아선다.
암봉을 올라서면 멀리 연주대가 보이고 눈앞에 암봉능선이 펼쳐진다.
능선을 오르다보면 많은 기암들을 만나게되는데 비상하는 거북이는 물론,
웅크리고 앉아 있는 강아지와,
하마바위가 내 시선을 정지 시키는데 하마 눈썹이 파랗다.
땀을 흘리며 한 시간 가량을 걸어 오르니 마당바위의 인파들이
보이고 관악산 정상이 저멀리 선명하게 다가선다.
무더운 날씨로 땀은 구슬처럼 굴러 떨어지고 타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커다란 바위에 앉아 잠깐 휴식하는데 계곡의 녹음은 청록색의
물감을 부어놓은 듯 절정을 이루고 있다.
이곳 관악산에도 이름모를 꽃들은 길가 곳곳에서 나를 맞아준다.
관악문이라 명명된 자연석문을 통과하니 정상은 더욱 가까와지고,
5분 가량을 더 나아가니 정상이 바로 코앞에 섰다.
우뚝 선 바위들이 정상의 연주대를 호위하고 섰는데,
연주대 오르기는 밧줄에 의지하며 온 힘을 다한 인내를 요구한다.
드디어 마지막 쇠 밧줄을 잡고 올라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많은 땀을 관악산에 뿌리고 오른 산객들이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는 표정으로 휴식하고 있고 한자로 음각한 `冠岳山'이란 글씨가 멋지게
정상을 지키고 서 있다.
정상을 지나 KBS 송신탑을 향하여 내려오다 보니 연주대는 깍아지른
절벽에 아찔하게 서 있는데 이 암자는 신라의 승려 의상대사가 문무왕
17년(677) 이곳에 관악사를 건립하면서 함께 세우고 의상대라 했으나
그 뒤 이름이 각각 연주대와 연주암으로 개명되어 불려지고 있다.
연주대는 주변의 경관이 뛰어나고 한 눈에 멀리까지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로 고려가 망한 후에 충신들이 이곳에 올라 멸망한 왕조를 연모하여
연주대라고 불렀다는 說과, 조선 태종의 첫째와 둘째 아들인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왕위계승에서 배제된 뒤 방랑하다가 이곳에서 主君에 대한
미련과 연민을 보냈다하여 연주대(戀主臺)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연주암은 연주대 바로 아래에서 푸른 숲에 둘러 쌓인채 조용하게 있기를
원하는 듯 했지만 오늘도 확성기를 통해 산을 울리는 불경소리는 연주암
서울대학교 쪽에서 오르는 소위 깔딱고개는 등산객의 편의를 위해 나무로
계단을 설치해 놓았는데 등산로의 운치는 떨어져 보인다.
8봉으로 가기위해 KBS송신소 방향으로 가는 길에 암봉에 우뚝선 사람은
마치 한 마리의 학이 전방을 응시하고 있는것 처럼 보인다.
KBS 송신소 이정표 앞에서 휴식하며 간식으로 원기를 돋우는데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이마의 땀을 닦아준다 .
길가에 핀 나리꽃은 그늘에 몸을 숨긴채 고개돌려 수줍게 서 있는데,
8봉을 향하는 능선의 기묘한 바위들은 내리쬐는 햇볕에 알몸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보니 KBS 송신소가 조그마한 연주대 앞에서
우쭐거리고 서 있다.
제2 국기봉에서 제1 국기봉을 지나 과천으로 내려서는 6봉능선이
아름답고,
불성사는 8봉밑 산 기슭에 포근히 잠든 양 평화롭고 고요하다.
암반위에 뿌리내려 시가지를 바라보고 있는 소나무는 의젓하고,
제1 국기봉을 지나서 인덕원으로 내려가는 능선에서 뒤돌아 본
8봉능선이 아름답다.
8봉으로 진입하는 이정표를 지나쳐 인덕원으로 내려가는 능선을 잘못
탔다가 한 시간 이상을 허비하고 되돌아서 8봉능선에 접어 들었는데
능선과 계곡의 경치가 가히 仙景이다.
내려서는 6봉을조금 비껴 우측에 서 있는 바위는 인간이 조각해 세운
것 처럼 정교한데 사람들이 왕관바위라 부르고 있다.
바위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삼성산 자락이 이제 가까운데,
지친 몸으로 앉아 쉬고 있는 나에게 계곡을 타고 몰려오는 천연바람이
땀으로 범벅이된 온 몸을 시원스레 애무한다.
8봉능선 길이 끝나고 무너미고개를 향해 하산을 계속하는데
계곡에서 재잘거리며 지쳐 지나는 이들을 부르는소리가 들려
찾아가니 수정처럼 맑고 시원한 물이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문자 그대로 명경지수(明境止水)에 발을 담그며 피로를 날리고 그냥
돌아서기 아쉬워 몇 모금 벌컥 벌컥 마시고 산길을 따라 내려온다.
예정대로라면 여기에서 무너미고개로 향해서 가다 삼성산을 올라야
하지만 길을 잘못 들어 한 시간 이상을 허비한 관계로 시간이 촉박해
오늘은 바로 안양유원지로 내려가기로 했다.
30분 쯤 걸어 내려와 서울대수목원 부근을 지나게 되었는데 아직도
하얀 밤꽃이 계곡으로 향기를 날리며 있고,
다리를 건너 산길은 계속 이어지는데 하늘을 올려다 보니 늦저녘의
하늘은 섬섬옥수(纖纖玉手)로 수놓은 듯 구름이 아름답다.
뒤돌아 보니 8봉능선은 나를 부르며 너울거리고 있다.
산길을 따라 걷기를 30여 분 드디어 유원지로 들어섰는데 이미 해는
서산으로 기울어 어둠이 드러워지기 시작하고 인공폭포와 분수대의
작동도 멈춰섰다.
유원지를 내려오는 길가에는 하나 둘씩 가로등을 밝히기 시작하는데
짚으로 엮어 씌운 음식점 지붕에 정감이 간다.
나홀로 산행 7시간 30분으로 몸은 지치고 피곤했지만 처녀 산행의
아름다운 팔봉능선을 가슴속에 가득 담은 오늘도 정말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