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지구대의 재를 지나 백학산으로
오늘은 백두대간 6차 산행으로 같이하는 친구가 개인사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한다고 하여 나홀로 산행을 계획하고 집을 나서는데
안개가 끼어있는 것을 보니 오늘 날씨는 좋을 것 같다.
거침없이 고속도로를 달려 죽암휴게소에 9시 반쯤 도착했는데
아직도 걷히지 아니한 안개로 주위의 분위기가 한층 차분하게
느껴지며 오늘은 여유로운 산행을 하라고 주문하는 것 같다.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는 오늘의 등반 목적지를 향하여 달려가는데
추풍령 I.C를 빠져나온 버스는 영동을 거쳐 상주 상판리 저수지를
지나서 10시 쯤 회룡리 마을 느티나무 앞에 도착했다.
오늘은 회룡재~개터재~463봉~윗왕실재~477봉~백학산~개머리재
~지기재까지의 구간 약 14.5Km을 등반할 예정인데 이 구간에는 재
(고개)가 특별하게 많기도 하다.
회룡리 마을로 들어서는데 하얀 수국이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우리의 장도를 격려한다.
마을을 벗어나 회룡재를 향하는 대간꾼들의 발걸음이 힘차다.
대간길에 접어드니 녹음은 이제 절정을 이룬 듯 하고 , 여기저기에
알 듯 모를 듯한 야생화가 우리를 반긴다.
우거진 녹음이 시야를 가리어 멀리 경치를 즐길 수는 없으나 자연의
다툼없이 공생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하며 걷는 초여름 산행은
또 다른 의미를 주며 따가운 햇볕을 그늘로 막아주는 인간을 향한
자연의 배려가 감사하기만 하다.
개터재를 지나고 463봉을 거쳐 윗왕실재에 이르렀는데 저 아래에
보이는 농촌마을의 풍경이 한가롭다.
백학산을 오르는 길 우측에 펼쳐지는 능선이 신록으로 단장하고
자태를 한껏 자랑하고 있다.
산을 오르는 길 한켠에는 힘차게 용트림하며 자란 참나무가
나에게 힘을 더해주며 응원한다.
12시를 조금 넘겨 백학산(白鶴山 .615m)에 도착하니 상주시청
산악회가 세워둔 표지석이 우리를 맞이하는데 오늘의 코스 중
조망권은 이곳이 제일 양호하다.
백학산 정상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갈증을 해소하며 휴식하는데
덤벼드는 곤충떼가 우리에게 갈길을 재촉한다.
내려오는 능선에서 간간히 보이는 좌우의 경치는 햇살을 받아 더욱
눈부시고,
길가에서 어여쁜 참나무 새잎의 어리광이 발길을 놓아주지 않는다.
솔잎 덮힌 능선길은 마치 부드러운 잔디밭을 걷는 기분이고,
산 어귀를 내려서자 금방 모내기를 마친 계단식 논에는 물이 가득한데
농부의 땀방울을 모아놓은 듯 하다.
농로를 좌측으로 보며 길을 다시 올라서서 산길을 조금 가니 과수원이
나타나고 이곳을 지나자 민가가 보이는데 여기가 개머리재라고 한다.
개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지금껏 지나온
여느 고개들과 다를 바 없이 평이하다.
하늘을 찌를 듯 시원하게 뻗은 침엽수가 빽빽한 길을 내려서자 여기에도
사과,포도 등 과수원이 곳곳에 보이는데 이곳 상주는 맛 좋은 과실을
생산하기에 적합한 지리적 조건과 기후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추풍령에서 화령재까지의 약 31Km를 중화지구대(中化地溝帶)라고 부르는데
이곳은 해발 약 250~350m의 산줄기가 이어져 있으며 일교차가 커서
포도, 사과, 배 등 과일 농사가 잘된다고 한다.
과수원이 끝나고 포장된 길로 접어드니 길가에 야생화들이 바람결에
하늘거리며 우리를 반겨준다.
포장길을 따라 조금을 내려가니 안내간판이 세워져 있는데 여기가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임을 알려준다.
지기재를 내려오는 도로가에는 빨간 단풍나무와 보라색 오동나무꽃이
만개해 있어 시골길의 한가로운 분위기를 더해준다.
버스가 주차된 곳에 도착하니 금강으로 흘러간다는 계곡물이 소리내며
시원스레 흐르고 있어 흘린 땀을 닦고 장비를 정비하였는데 대간산행
길에서 물을 만나 땀을 씻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여기에서 된장국으로 식사를 하며 후미를 기다리는 동안 한가로이
주위의 경치를 보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한껏 즐겼다.
주위를 정리하고 4시 반 쯤 귀경길에 올랐는데 길 양쪽으로 펼쳐지는
우리의 농촌 풍경이 너무나 평화롭고, 달리는 차창를 따라 이어지는
부드러운 산의 능선이 눈부시게 펼쳐진다.
영동 I.C로 진입한 버스는 저녘의 햇살을 받으며 거침없이 달리는데
아카시아의 백색 물결까지 합세한 5월의 산야는 `계절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로는 부족한 느낌이다.
신탄진 휴게소에서 본 예쁜 꽃들은 우리의 마음을 한층 환하게 해주는데
넘치도록 많은 것을 누리는 내가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든다.
수도권으로 점차 가까워 올수록 주위가 복잡해지기 시작하는데 이제
내 삶의 터전으로 다가가고 있슴을 실감하며 그래도 여유자적의
평상심으로 살겠다고 마음을 추스린다.
오늘의 산행구간 중 5개의 재(고개)를 지나 오면서 학자여등산(學者如登山.
배우는 것은 등산하는 것과 같다) 이라는 語句가 떠오르는데 배움뿐만
아니라人生도 登山과 같은 것임을 다시금 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