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간절한 바람, 수명과 이름
조선 2대 임금 정종의 열세번째 아들은 장천군 보생(普生)이다.
그는 네 아들을 두었는데 맏이인 형(炯)에게는 아들이 없어
둘째 혼의 아들 팽년(彭年)을 양자로 들였다.
팽년의 형은 팽조(彭祖)였다. 팽년은 구복(龜福), 구정(龜禎),
구천(龜千)이라는 구 자 항렬의 세 아들을 두었다.
이들의 사촌인 팽조의 아들들은 구수(龜壽)와 구년(龜年)이다.
보생의 셋째 아들인 삼양군 요는 복정(福禎)과 미수(眉壽)라는
이름의 두 아들을 두었는데 복정은 후사가 없고 미수는 천년
(千年)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팽년의 팽은 팽조에서 나온 말이다. 팽조는 고대 중국의 전설상의
임금인 황제의 증손으로 은나라 때에 700살이 넘었지만 소년처럼
보였다는 인물이다.
이름에 거북 구(龜)자를 쓴 것은 십장생의 하나인 거북처럼 오래
살라는 뜻이다. 여기다 목숨 수(壽), 나이를 의미하는 해 년(年)까지
붙여 쓰면 한층 더 노골적인 기원이 된다.
미수라는 이름의 미(眉)는 장수를 해서 눈썹이 긴 사람을 뜻하므로
그렇게 되도록 오래 살라는 것이다. 그 미수의 아들의 이름이`천년'
이 된 것은 가문의 전통상 당연해 보인다.
기왕 살 것, 만년을 살라는 이름은 없을까? 있다.
고려 때 평장사를 지내며 홍건적을 물리친 이승경의 아들 5형제 중
하나가 만년(萬年)이다. 만년은 백년과 천년이라는 형님이 있었고
참찬 이억년(李億年), 정당 문학 이조년(李兆年)을 동생으로 두었다.
이조년은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라는 시조로 유명한
그 이조년이다. 이조년은 1269년에 태어나 1343년에 죽었으니
이름을 지어준 어버이의 염원만큼 살지는 못했으나(조년은 백만년에
해당한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장수한 편에 속했다.
조선 중기에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이라는 시인이 있었는데
`령(齡),은 곧 `년'과 같으니 그 아우가 임백령(林百齡)이다.
임백령은 1545년(명종 즉위년) 호조판서로 소윤(小尹)에 가담해
을사사화를 일으켜 공신으로 책록된 뒤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오다가 영평에서 병사했다.
1570년 `을사간당'으로 지목되어 관직이 추탈되고 말았으니
목숨은 물론이고 이름도 백 년을 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