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봉을 넘어 월성치까지- 백두대간 49회차 산행.
떠나는 겨울을 배웅하러 덕유산으로 발길을 들인다.
향적봉의 상고대가 그립고 2년 餘 전 육십령에서 향적봉을 거쳐 삼공리로 내려섰던
무박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육십령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결과적으로 겨울산행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무리한(?) 계획으로 삿갓골재대피소에
들지 못하고 황점으로 내려서는 아픔을 맛보아야 했지만 거창읍내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또 다른 추억을 만드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고속버스터미널(센트럴) 호남선 승차장에서(6번 홈) 전주행 우등고속버스에 탑승하여
두 시간 半 가량을 달려 전주터미널에 도착해 택시로 육십령으로 이동했다.
육십령휴게소에는 우리일행 말고는 산객이 전무하고 난로의 연기만이 허공으로 피어 오르며
적막감이 감도는데 햇살이 제법 따스하지만 간간히 지나가는 바람은 아직도 차갑다.
장비를 정리하여 산행을 시작하는데 삿갓골재대피소에서 1박을 예정하고 준비한
음식물 등이 담긴 배낭이 묵직하게 어깨를 짓누른다.
육십령에는 생태이동통로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고 육십령표지석과 저만치 육십령정이
이따금 고개를 넘나드는 차량들을 쓸쓸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공사중인 생태이동통로를 통과하여 함양군 방향에서 산행을 시작한다(10:35).
등산안내판을 좌측으로 끼고 오른다.
곧 선답자들의 리본이 반겨 맞는다.
육십령에서 200미터를 지난 지점에 서봉 7.4Km를 알리는 안내목이 서있다.
어느덧 양지편에는 눈이 녹아 맨살을 드러내며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할미봉이 전망되는 전위봉에 올라섰다(11:25).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세운 말목에는 육십령에서 1.2Km를 진행했다고 되어 있는데
함양군에서 설치한 이정표는 1.5Km를 가리키고 있어 헷갈리게 한다.
약 20미터 정도 등산로에서 우측으로 비켜난 암봉에서 할미봉을 보았다.
우측으로 서봉(장수덕유산)이 고개를 내밀고 남덕유산을 지나 능선이 흐르고 있다.
동영상으로 보는 하늘금.
할미봉 너머로 대간길은 서봉과 남덕유로 이어지고 남덕유산에서 분기한 진양기맥은 계속하여
월봉산, 금원산, 기백산으로 남동진하며 하늘금을 그리고 있는데 150餘 Km를 달려서
진주의 진양호까지 그 줄기가 이어진다.
봉우리를 내려서는 길이 미끄럽다.
헬기장을 지난다.
더욱 가까이로 접근하며 본 할미봉.
할미봉으로 오르는 급경삿길.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고개를 돌려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우측으로 마루금이 이어지고 멀리 지리주능선이 가물거린다.
다시 오름을 이어간다.
할미봉에 올랐다(12:17).
무박산행으로 랜턴을 머리에 매달고 할미봉을 두어 번 지났던 경험은 있지만 백주 대낮에 할미봉을
오른 것은 처음인데 기암괴석들이 주변 풍광을 더해주고 사방으로 조망이 시원하다.
1026m의 표기가 뚜렸한 정상석과 삼각점이 있고 조망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백두대간은 육십령에서 깃대봉을 거쳐 영취산, 백운산을 지나 지리산으로 이어지고 호남정맥은
영취산에서 분기하여 장안산, 마이산, 내장산, 강천산, 무등산, 제암산, 백운산을 거쳐
광양만 외망포구까지 그 줄기를 잇는다.
북쪽 방향으로 서봉과 남덕유산이 장쾌한 하늘금을 그린다.
남덕유산 아래로 경상남도 덕유교육원 건물이 보이고 조금 더 내려가면 남덕유로 오르는 또 다른
산행깃점인 영각사가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남덕유에서 분기한 진양기맥은 동남방향으로 흘러간다.
남쪽의 육십령 방향으로는 깃대봉이 보이고 그너머로 영취산, 백운산을 거쳐 지리산까지
백두대간 마루금이 흐르고 있는데 천왕봉과 반야봉 등이 저 멀리 아련하다.
동영상으로 보는 할미봉에서의 조망.
5분 쯤 조망을 즐긴 후 할미봉을 내려서니 곧 대포바위 이정표가 나타났다.
안내문을 읽는 것으로 대신하고 직진하여 지나친다.
족히 7~8십도는 되어 보이는 급경사 계단이 눈앞으로 다가서는데 공포감이 엄습한다.
조심 또 조심해서 내려선다.
계단을 내려섰더니 이번에는 눈이 얼어붙은 암석구간이다.
매여져 있는 밧줄이 낡아서 매우 위험해 보인다.
스틱을 아래로 던진 뒤 양손으로 밧줄을 잡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옮긴다.
뒤돌아 본 할미봉.
우리는 움푹 패인 계곡 경삿길을 밧줄에 의지하여 내려선 것이다.
매우 위험한 구간으로 계단설치가 필요해 보인다.
급경사 계단을 또 내려서야 한다.
오름뒤에는 내려섬이 있고 비움이 있으면 무엇인가로 채워진다.
계단을 내려서며 진행방향의 등로를 가늠해 본다.
햇볕을 껴안고 점심식사를 하며 휴식한 뒤 산행을 재개한다.
양지가 있으면 응달이 있다.
사각거리던 눈이 뽀드득 거리며 신음한다.
삼자봉이라고 쓰여 있는 봉우리에 도착헀다(14:03)
덕유산국립공원 이정표에는 육십령에서 서봉까지 7.6Km로 되어 있으나 함양군에서 설치한 이정표는
7.0Km로 표시되어 있어 0.6Km의 차이가 있다.
삼자봉 우측으로는 경상남도 덕유교육원 이정표가 있는데 영각사로 가려면 남덕유산에서 바로
발길을 돌리든지 이곳에서 내려서야 할 것이다.
삼자봉에서 이곳 안부로 잠시 내려섰다가 본격적인 서봉오름이 시작된다.
육십령에서 5.2Km를 진행했고 남덕유산까지 3.6Km가 남았다고 알려주는 이정표를 보며 좌틀한다.
땅이 질퍽하고 雪淚가 찔끔거린다.
시야가 트이는 안부에 올라섰다(14:45).
양지바른 곳에서 버들강아지가 살며시 실눈을 뜨고 봄을 기다린다.
털 처럼 보숭보숭 달려 있는 것이 바람이 불면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어 대는 것 같아서 버들강아지란다.
민족시인 신동엽(申東曄; 1930~1969)은 봄을 이렇게 노래했다.
봄은,
남해에서도 북녁에서도 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밖에서
그 매서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 녹이듯 흐물흐물 녹여버리겠지.
그는 봄을 애절하게 민족통일로 노래했지만 소시민인 나는 그냥 봄을 봄으로 맞이할 뿐이다.
납일(臘日;섣달 그믐 께)에 내린 눈이 녹은 물을 臘雪水라고 하는데 毒을 해독하고 갈증을 없애주는
약효가 있다고 하여 그릇에 모아두고 환약을 만들 때 쓰기도 하며 눈에 바르면 안질에 걸리지
않을 뿐아니라 눈이 밝아진다고 한다.
납설수를 머금은 진흙덩어리가 아이젠에 달라 붙어 발길을 잡는다.
흙을 적시고 난 납설수는 가느다란 물줄기가 되어 흐른다.
숨을 토해내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본다.
지나온 할미봉 너머로 깃대봉이 가깝고 지리산까지 백두대간 산줄기가 이어진다.
눈앞으로 서봉이 다가선다.
암봉에 올라서니 이정표가 서봉 1.6Km를 알려준다.
암봉에 올라서서 본 서봉과 남덕유.
서봉에서 유려한 곡선으로 흘러 내리던 능선은 서서히 남덕유를 치켜 세운다.
남덕유에서 분기한 진양기맥을 언젠가 이어가고 싶다.
암봉을 내려서니 또 한바탕 거친 오르내림이 기다리고 있다.
잡목을 헤치고 진행하는 구간이 잠시 이어진다.
지나온 길을 다시 뒤돌아 본다.
남덕유에서 영각사는 바로 떨어지고 그 뒷줄기는 진양기맥이 이어져 내리고 있다.
더욱 서봉이 가까워진다.
서봉에 올랐다(16:44).
육십령을 출발한지 6시간이 넘게 흘렀다.
평소에는 4시간이면 족했는데 겨울산행임을 간과하고 있었다.
사방의 조망이 시원하다.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남덕유를 향한다.
서봉을 내려서며 장쾌한 덕유주릉을 조망한다.
계획으로는 월성치를 지나 삿갓골재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묵고 향적봉으로 진행하여 설천봉에서
곤도라를 타고 하산하게 되어 있었으나 예상보다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려 일단 월성치에
도착하여 상황을 판단하기로 했다.
남덕유여 다시 한 번!!!
지나온 능선이 선명하게 이어지고 있다.
다시 차가워진 바람이 몸속으로 파고든다.
질퍽거리며 미끄러지던 눈길이 다시 얼기 시작해 갈기를 세우며 앙탈을 부린다.
하얀 눈을 덮은 채 겨울잠에 빠져있는 남덕유를 향해 급경사 계단을 내려선다.
남덕유로 접근하는 길은 두껍게 눈이 뒤덮여 아직도 봄기운이 스며들지 못하고 있었다.
남덕유산 갈림길에 이르렀다(17:18).
일행 중 한 분이 힘들어 하여 남덕유로 오르지 못하고 우회해 월성치로 향한다.
월성치로 발길을 옮기며 뒤돌아 본 서봉에는 어느덧 석양이 걸려 있었다.
남덕유산을 우회하는 사면길.
남덕유산에서 내려서는 등로와 합류하는 지점을 지난다.
산행을 시작한 육십령에서 8.5Km를 진행했고 우리가 숙박을 예약한 삿갓재대피소까지는
4.0Km가 남았다고 이정표가 안내한다.
진행하며 뒤돌아 본 남덕유.
진행방향의 덕유주릉을 당겨본다.
삿갓재가 가까이에 있고 그 뒤로 무룡산이 보인다.
활 처럼 좌측으로 휘어져 향적봉으로 덕유주릉이 힘차게 달린다.
월성치로 내려서기 시작한다.
녹아서 미끄러지는 눈길보다는 사각거리는 눈이 밟고 내려서기에 훨씬 낫다.
월성치 전방 500미터 지점을 통과한다.
월성치에 도착했다(17:55).
산행을 시작한지가 7시간이 훌쩍 넘었다.
삿갓골재대피소까지 6시간이면 넉넉할 것으로 예상했었으나 얼어붙은 암벽과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구간을 지나면서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힘들었다.
삿갓골재대피소는 아직도 급경사의 삿갓봉을 넘어 2.9Km를 더 가야한다.
예약한 삿갓골재대피소 직원과 통화한 끝에 우리는 황점으로 하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진정으로 용기있는 사람에게 포기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내년의 덕유 상고대는 더욱 아름답게 우리를 반겨줄 것이다.
급경사의 바람골을 내려선다.
등산은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산행속도는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호흡은 가쁘기 전에 조절하고 근육은 지치기 전에 풀어주어야 한다.
빛이 떠나간 자리에 어슴푸레 어둠이 깔렸다.
이마에 매달은 랜턴 스위치를 누른다.
어둠이 내리깔린 황점마을에 도착했다(19:22).
오랜만에 산골에서 민박할 기회를 잡았으나 손님 받을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대답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위천개인택시를 불렀다(055-943-0300).
10餘 분을 기다리니 개인택시(010-3326-8808 이명도씨)가 황점슈퍼 앞에 선다.
거창읍내로 택시를 내몰았다.
대간꾼들을 주고객으로 태운다는 기사님(이명도씨)은 고향사랑이 남달랐고 주변에 산재한 산의
높이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시는 등 진정한 프로였다.
터미널 가까이에 모여있는 숙박촌에 내려준 기사님은 이곳의 대략적인 가격만을 알려주고
이권개입의 인상을 주면 안된다고 하면서 숙소선정은 전화해 보고 판단하라며 떠난다.
우리는 네온이 번쩍거리는 모텔들을 제쳐두고 간판불도 꺼져버린 여관으로 들었다.
♣산행일시:2013. 2. 27(수요일, 백두대간 49회차).
♣산행구간: 육십령~ 할미봉~ 서봉(장수덕유산)~ 월성치---->황점.
♣산행날씨: 대체로 맑고 조망좋음.해질녁에 추워짐.
♣교 통 편: 고속버스 호남선 터미널->전주 터미널(06:30 發 우등고속 17,900원, 2시간 40분 소요),
전주터미널->육십령(택시 50,000원,약 40분 소요).
황점마을->거창읍내(택시 30,000원, 약 25분 소요),
거창터미널->서울 남부터미널(08:30 發 거창고속 18,600원, 3시간 30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