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기슭을 거닐다(10)- 쿰부히말의 전망대 칼라파타르에 서다
칼라파타르에 오르기 위해 새벽 4시 잠에서 깼다.
룸메이트인 차교수님은 오름을 포기하고 침낭속에서 나에게 성공적인 등정을 격려하신다.
식당으로 갔더니 과반에도 못미치는 여덟 명이 출정을 위해 나와 있었고 멀건 죽을 조금씩 마신 후
결연한 의지를 다지며 밖으로 나가니 칠흑속에서 어슴푸레 눈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캄캄한 어둠속으로 들어서며 칼라파타르 등정을 시작한다(05:00).
방향감각도 잃은 채 앞사람의 뒤꿈치를 따라 얇게 깔린 눈위를 걷는다.
4~5분 쯤 걸었을까 평탄한 길이 끝나고 경사로가 시작되는데 천천히 걷지만 거친 숨소리가
차가운 대기를 가르며 허공으로 날아간다.
여러 겹 옷을 껴입어 추위는 느끼지 못하나 발끝과 손이 시려온다.
헐떡이는 숨을 토해내며 30분 쯤 올라가자 여명이 밝아오고 설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어젯밤 내린 눈이 온세상을 하얗게 뒤덮고 있다.
20분 쯤 더 오르자 동쪽하늘이 발개지고 눕체 사이로 에베레스트가 모습을 드러낸다.
발걸음을 떼다 멈추기를 반복하며 큰 바위들이 널려 있는 너덜구간을 30분 쯤 올랐을까 푸모리봉에
햇살이 퍼지기 시작하고 뒤로는 쿰부빙하 너머로 아마다블람과 캉테가, 탐세르쿠, 로부체 등
쿰부히말의 설봉들이 보석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눕체 뒤에서 더욱 가까이 모습을 드러낸 에베레스트도 햇살을 받아 들이고 있다.
쿰부히말의 설봉들 앞에 선다.
푸모리를 배경으로 기념을 남긴다.
칼라파타르 9부 능선에 선다.
좌측 방향으로 창리 샤르 빙하(Changri Shar Glacier)와 고락 셉 빙하 건너 앞쪽에 Changri(6,027m)가
있고 그 뒤로 춤부(Chumbu. 6,859m)와 차르쿵(Charkung. 7,029m) 등 설봉들이 줄을 잇고 있다.
창리 봉 왼쪽으로는 창리 눕 빙하(Changri Nup Glacier)가 펼쳐져 있었다.
쿰부히말의 눈부신 설봉들을 배경으로 칼라파타르를 오르는 트레커들이 줄을 잇고 있다.
칼라파타르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눈덮인 커다란 바위들이 널부러져 있어 위험했다.
몇 걸음 옮기고 쉬기를 반복하는 칼라파타르 오름은 역시 힘겨운 고난의 길이다.
머리위로 룽다르가 휘날리고 있는 정상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진다.
롯지를 출발하여 2시간 15분 뒤 칼라파타르 정상에 안착했다(07:18).
뒤로 보이는 설봉은 7,165m의 푸모리 봉이다.
모두들 감격에 겨워 탄성을 연발한다.
어떤 외국인 부부(?)는 얼싸안고 뜨거운 키스로 등정의 감격을 만끽한다.
쿰부히말의 장엄한 山群앞에서 창조주의 놀라운 능력에 경탄하며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라는
찬송가 79장 구절을 계속 흥얼거리지만 벅차 오르는 흥분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뒤따르는 트레커들에게 정상을 내주려면 오래 머무를 수 없다.
나에게 언제 또 다시 5,500m 대의 고봉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까?
아쉬움을 남기고 자리를 옮겨 링트렌과 쿰부체를 배경으로 선다.
일행인 장미씨와 어깨동무로 칼라파타르 등정의 기쁨을 나눈다.
일행 중 2명은 아예 등정을 포기했고 한 분은 아쉽게도 막바지에 물러서고 말았다.
일생에 다시 없을지도 모를 기회를 포기한다는 건 진정 용기있는 자의 결단으로 박수 받아야 할
행동이지만 얼마나 악전고투 중이었는지 짐작이 된다.
에베레스트봉 위로 찬란하게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칼라파타르 정상에서 20분 가량을 머무는 동안 쿰부히말을 바라보며 무한한 감격에 사로잡힌다.
푸모리를 돌아 보고 쿰부빙하를 따라 이어지고 있는 설봉들을 가슴에 깊숙히 담는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숲속이나 험한 산골짝에서 지저귀는 저 새소리들과,
고요하게 흐르는 시냇물은 주님의 솜씨 노래하도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하산길은 오를 때 보다는 훨씬 수월하다.
캄캄한 새벽에 오르며 보지 못했던 칼라파타르 이정표를 지난다.
우리가 하산을 완료하고 있는 시간에도 칼라파타르를 향하는 발걸음은 이어지고 있었다.
8시 40분 쯤 세 시간 半 가량의 칼라파타르 등정을 마치고 모두 귀환했다.
서둘러 아침식사를 마치고 짐을 챙겨 칼라파타르를 오르지 않았던 일행들과 함께 에베레스트 트레킹
하산일정을 시작한다(10:02).
고락 셉이 우리의 발길을 붙잡아 두려는 듯 초장부터 오름길이 시작되는데 새벽부터 젖먹던 힘까지 쏟은
발걸음은 납덩이를 달아 맨 듯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진다.
멀어져 가는 고락 셉 롯지를 뒤돌아 본다.
칼라파타르여!
푸모리여!
잘 있거라!!!
눕체여!
영원하라!!!!!
쿰부빙하를 좌측으로 바라보며 오름길 하산을 계속한다.
뒤돌아 보는 푸모리와,
우측으로 이어지며 설봉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오름길을 올라 완만한 너덜을 지나면 평평한 분지로 내림길이 이어진다.
방울을 딸랑거리며 고락 셉으로 향하는 야크들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언제나 눈을 껌벅거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을 뿐이다.
숨 돌릴 사이없이 무한경쟁하며 질주하고 있는 우리의 일상을 돌이켜 본다.
어제 고락 셉으로 오르며 보았던 박영석씨와 함께 에베레스트를 오르다 숨을 거둔 남원우, 안진섭씨의
추모동판이 설치된 바위가 있는 안부로 내려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어제는 우리의 자랑스런 한국 여성 산악인 鐵女 오은선씨가 안나푸르나 정상에
태극기를 꽂음으로써 여성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역사를 새롭게 쓴 역사적인 날이었다.
한참을 걷다가 지난 길을 돌아본다(11:38).
푸모리 부터 링트렌, 춤부체, 눕체가 환상적인 병풍을 만들고 있다.
그곳을 향해가는 트레커들이 우리와 스쳐 지난다.
얼마를 또 걸었을까 우리가 그제 저녁 머물렀던 로부체가 시야로 들어오고 타부체 픽과 촐라체가
EBC 트레킹을 무사히 마치고 하산하고 있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로부체에 도착하여 차를 한 잔 마시며 잠시 휴식하고 12시가 넘었는데도 점심식사를 미룬채
두클라로 발길을 옮기기 시작한다.
로부체를 지나고 쿰부빙하를 따라 바람을 맞으며 내림길을 계속한다.
눈앞으로 탐세르쿠와 캉데카가 모습을 드러낸다.
빙하를 건너고 오름길을 간다.
영혼이 머물고 있는 언덕에 이르렀다(13:08).
망자들을 추모하는 돌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건너로 아마다블람이 탐세르쿠, 캉데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우뚝하니 서 있다.
시스티나 성당 천정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갑자기 머리에 떠오른다.
구름에 휩쌓인 쿰부히말의 설봉들은 그렇게 선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영혼이 머무는 언덕에서 한참을 휴식하고 내려선다.
두클라를 넘어 페리체 평원으로 넘어가는 등로가 가느다랗게 보이고 있다.
두클라의 야크롯지에 도착했다(13:35).
예정에는 로부체까지 진행하여 숙박할 예정이었으나 시설이 좀 더 좋고, 고도를 더 낮춰 고소에서
벗어나고자 페리체까지 내려서기 위해 무리하고 있는 일행들은 기진맥진해 있었다.
라면으로 늦은 점심식사를 마친 우리는 다소 기력을 회복하여 페리체로 향한다(14:32).
언덕을 돌아 넘으면 페리체 평원이 시작된다.
드넓은 페리체 평원을 따라 몰려드는 바람은 거셌다.
올라갈 때 그렇게도 얌전하던 바람이 흐느적거리는 우리의 온몸을 뒤흔들고 있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지는 몽환경(夢幻境)에 모두들 도취되어 있었다.
우측으로 타부체 픽과 촐라체가 가까워져 있고, 이름모를 블랙 마운틴은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몰려드는 구름과 씨름하고 있었다.
몰아치는 광풍과 사투하며 얼마나 걸었을까?
오늘 유숙할 페리체 롯지가 이제 멀지않게 보이지만 우리는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먼지가 가득한 입속을 부셔내고 간식으로 원기를 보충한다.
페리체 마을로 들어선다(15:40).
낮게 드리워진 구름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다.
오늘 밤 머물 롯지에 도착하는데 야크 한 무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길을 가고 있었다.
우리가 롯지에 도착한 후에도 구름이 설봉 주위를 계속 맴돌더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고락 셉(5,190m)에서 페리체(4,240m)로 고도를 낮춘 일행들은 차를 마시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모두들 생기를 되찾아 가고 있었는데 자연의 섭리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를
또 다시 실감하며 자연을 운행하시는 창조주의 능력에 敬畏之心이 엄습한다.
제10일차 일정: 고락 셉(Gorak SHep. 5,140m)~ 칼라파타르(Kala Patthar. 5,550m)~ 고락 셉~
로부체(Lobuche. 4,910m)~ 두클라(Dukla. 4,620m)~ 페리체(Pheriche. 4,240m)
트레킹 날씨: 맑고 바람 거세게 붐. 오후에 구름 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