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가슴 랑탕계곡에 안기다(3)
해발 2480m의 라마호텔을 출발하여 3540m에 위치한 랑탕까지 트레킹이 예정된 오늘은
약 일천 미터의 고도를 높여 이제 삼 천 미터가 넘는 고지대 산행이 시작되므로 고산증에 대비하며
더욱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데 일행들은 해외 고산경험이 풍부한 어르신들의 조언에 따라
어제 저녁 잠자리에 들면서 각자의 체력과 컨디션을 고려하여 고산증 예방을 위해 약을 먹었지만
천천히 산행하는 것이 제일 확실한 고산증 예방책이라는 것을 누차 들었던 바라 최후미에서
거북이 산행을 하리라 마음 먹는다.
계곡의 물소리와 간간히 창문을 흔드는 바람소리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을 거의 뜬눈으로
새우다시피 하여 연 이틀 잠을 계속 설친 나는 올 여름 일본 트레킹 때 처럼 또 잠을 못 자고
시달리는 것 아닐까 불길한 예감을 하며 침낭속에서 나오니 상당한 추위를 느낄 정도의
차가운 공기가 몽롱한 정신을 흔들어 깨운다.
여섯 시 반 경 시작해 느긋하게 식사를 마친 우리는 일곱 시 반이 되자 산행을 시작하는데
어제는 東進을 하였지만 오늘은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고라 타벨라까지 북진을 하다가 그후로는
랑탕까지 동동북진을 하며 고도를 높여가게 된다.
태고의 숨소리가 살아 숨쉬는 한적한 산길을 삼십 분 가량 걸어가자 랑탕계곡의 원시림 사이로
백옥같이 하얀 맨살을 드러낸 설산이 보이니 모두들 환호성으로 반기며 셧터를 누르지만
디카 성능의 한계로 신비스런 풍경을 제대로 담지 못함이 못내 유감스러울 뿐이다.
만년설이 녹아내려 Langtang Khola(랑탕계곡)로 모여드는 물은 원시림이 우거진 넓은 계곡을
유유자적 흘러가고 있고,
우리는 그들이 불어넣은 생명체의 신비함에 감탄하며 물의 흐름과 역방향으로 랑탕을 향하는데
어제도 보았던 흰무늬 원숭이 가족들이 원시림에서 나무위를 뛰어 다니며 랑탕의 일원으로
평화로운 일상을 구가하고 있었다.
설산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와(08:24) 우리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데 가이드는 저 높은 봉우리가
langtang two봉(6581m)이라고 말하며 랑탕산맥은 우측으로 이어져 langtang lirung(7246m)에
이르러 하늘에 가장 근접하게 된다고 우리에게 설명한다.
태초의 생명수는 원시계곡에 생명들을 잉태시키며 흘러 내리고 있었다.
날등처럼 좁고 경사진 길이 수십 분 계속 되더니 평탄한 전나무 숲길이 얼맛동안 이어진다.
길을 오르며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랑탕의 설산은 조금씩 모습이 달라진다(09:07).
River side(2769m)에 도착하니(09:11) 장작난로에서 피어 오르는 연기가 자욱하고 고운 빛깔로
물든 단풍나무가 우리를 반겨 맞이한다.
우리는 여기서 차를 마시며 약 삼십 분 가량 여유있게 휴식하고 길을 떠난다.
산길을 가며 우측으로 바라보는 산에는 전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이제는 랑탕 투의 모습이 사라지고 랑탕 리룽이 랑탕의 맏형다운 모습으로 다가서는 우리에게
자애로운 눈길을 보내주고 있었다.
평탄하고 널찍하던 길은 좁아지며 경사가 가파라진 협로를 오른다.
협로를 오르다 뒤돌아 본 랑탕계곡은 발치 저 멀리 보이고 아직도 산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경삿길을 올라 룽다르가 휘날리는 평탄한 길가에서 배낭을 내려놓고(10:32) 잠시 휴식했다.
오른쪽에는 Chimsedang Lekh(침세당 산맥으로 부를 수 있겠다)의 峰들이 원시림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후미를 기다리며 충분한 휴식을 취한 우리는 원시림이 이어지는 길을 또 오른다.
이제 랑탕산맥의 최고봉인 랑탕리룽만이 모습을 보여줄 뿐 다른 설산들은 앞산에 가려져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11:05).
원시림이 계속되는 평탄한 길을 칠팔 분 걸었을까 갑자기 시야가 트이며 넓은 목초지가 펼쳐진다.
`말의 쉼터'라는 뜻을 가진 고라 타벨라(Ghora Tabela)에 도착했다(11:17).
분지 형태의 넓은 공간은 어제부터 하루 반나절 동안이나 막혔던 시선을 멀리까지 보낼 수 있어
장쾌한 랑탕의 참모습을 조망할 수 있었고 가슴이 뚫리는 시원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티베탄 호텔 벽에는 고라 타벨라의 해발이 3008m라고 표기되어 있으니 우리는 이제 삼 천 미터가
넘는 고지대 트레킹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고라(Ghola)가 여기에는 고다(Ghoda)로 표기되어 있는 것 처럼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同地異名을
발견하게 되는데 현지인들의 발음을 영어로 옮기면서 생긴 착오가 아닐까 생각되며 관심을
가지고 일치시키는 노력이 필요함을 느낀다.
주방팀은 어느새 이곳에 도착하여 조리를 했는지 야외식탁에 비빔냉면을 차려 놓았고 우리는 따스한
햇볕 아래에서 왼쪽으로 랑탕의 설산들을, 오른쪽으로는 만년설이 녹아 계곡으로 흘러 내리는
정말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보며 지상 최고의 멋들어진 점심식사를 하였다.
눈시린 코발트빛 하늘에는 엷은 흰구름이 스쳐갈 뿐 청명하고 살랑거리는 바람이 시원하다.
룽다르가 바람에 펄럭이며 이방인들의 가슴을 흔들어 놓는다.
룽다르가 무엇이냐고 가이드에게 물었다.
`룽'은 바람이라는 말이고 `다르'는 깃발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가로로 펄럭이는 것을
`룽다르'라고 하고 세로로 서 있는 것을 `다르족'(발음을 정확히 표기하기가 어렵다. 그런 이유인지
어떤 분들은 내가 `룽다르'라고 표기한 것을 `룽따'라고 표기하셨다)이라고 한다.
깃발에는 라마 경전을 기록해 놓았으며 하늘(군청), 구름(하양), 불(빨강), 물(파랑), 땅(노랑)을
상징하는 다섯가지 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시간 반에 이르는 식사와 여유로운 휴식을 마치고(주방팀의 설거지와 뒷정리를 기다리며)
시야가 트인 랑탕 트레킹을 시작하자마자 양지바른 곳에서 야크가 한가롭게 되새김질하며
졸고 있는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돌을 둥그렇게 쌓은 곳은 야크의 간이축사로 보이며 때로는 목동들이 텐트를 치고 바람을
피하기도 하는 용도로 이용될 것이다.
완만하고 널찍한 산길을 따라 오르며 주변의 산을 올려다 본다.
트레킹을 하는 동안 높은 산들을 조망하느라고 고개를 계속 들어서인지 잠자리에 들때면
목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고라 타벨라를 지나며 계곡 주변은 넓어졌고 곳곳에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었다.
Thangshyap village(3141m)을 지나쳐 간다(13:53).
이 마을에는 초입에 Buddha hotel을 비롯해 Summit guest house, 해발 3200m에 Tibetan lodge 등
숙박시설이 있었고 주변은 넓은 야크 방목장이 형성되어 있다.
탕샵마을을 지나 평탄한 오름길을 진행한다.
띠엄띠엄 보이는 집 근처에서 일하고 있는 농부와 어린아이를 돌보고 있는 엄마를 만나는데
그들의 생활상이 우리와 너무나 흡사하게 보였다.
집앞을 서성이는 촌로에게 사진기를 들이대자 요리조리 포즈를 취하며 우리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는 여유를 보이면서 손을 벌려 모델료(?)를 요구하기도 했다.
탕샵마을을 지나 출렁다리를 건넌다(14:35).
드디어 진행방향 오른쪽 방향으로 나야캉가(Naya Kanga. 5846m)가 모습을 드러낸다.
왼쪽에서는 랑탕리룽이 오른쪽 방향으로 흘러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산모퉁이 좁은 길을 돌아 참키(Chamki)마을로 진행한다.
랑탕계곡을 굽이쳐 흐르는 물과 전나무 숲.
계곡 주변을 따라 전나무 숲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수목한계선이 사천 미터는 넘는 듯 하다.
참키마을에 도착했다(14:47).
우리는 배낭을 벗어놓고 휴식하면서 100루피를 주고 Yak curd를 한 컵씩 음미했다.
야크 젖을 반쯤 가공하여 걸죽하게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신맛이 강해 먹기가 어려웠으나
차츰 고소한 뒷맛을 느낄 수 있었다.
참키마을에서 보는 나야캉가와 랑탕리룽.
진행하며 다른각도에서 본 랑탕리룽.
스핑크스를 닮은 거대한 암석.
일행 중 어떤 분은 원숭이 같다고도 했다.
태양은 등뒤에서 일행들을 랑탕마을로 밀어 올리고 있었다
라마전망대에 도착했다(15:36).
랑탕마을 뒷편으로 랑시샤 리(Langshisa- Ri. 6310m)의 설봉이 고개를 옆으로 내민다.
일행들은 긴 나무의자에 앉아 다리쉼을 하며 진행방향을 배경으로 인증 샷을 누른다.
저지대로 내려가 땔감을 주워서 집으로 향하고 있는 할머니는 우리와 같이 랑탕마을을 향해 힘겨운
오름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옆에 나뭇짐을 내려놓고 쉬는 그녀에게 사탕을 몇 개 주었더니
환하게 미소를 머금는다.
랑탕에 접근해가자 더욱 넓은 목초지에 야크 방목장이 펼쳐지고 마을도 제법 크게 형성돼
있는 모습이 보인다.
마을 어귀로 들어섰다(15:58).
양지곁에 앉아 옷감을 짜고 있는 여인에게 인사를 건넸더니 하던 일을 멈추고 순박한 미소를
보내는데 그들은 정말 순수했고 천진스러웠으며 자연과 닮아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랑탕의 명물 출렁다리를 또 건넌다(16:02).
이 다리를 건너 조금만 가면 오늘의 종착지인 랑탕마을에 이르게 된다.
랑시샤 리 峰이 근사하게 보이고 그 옆으로 강첸포(Gangchhenpo. 6387m)가 모습을 드러낸다.
`랑시샤 리'는 `선생님의 고개'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강(산)첸포(크다)는 큰 산, 거대한
산을 뜻하는 말이다.
랑탕리룽이 올려다 보이는 동네 모퉁이에서 코를 훌쩍거리며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들
어렸을 적 추억을 떠올려 주었고 어렸을때 부터 고지대에서 뛰놀며 자란 사람들의 심폐는
우리의 그것보다 뛰어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랑탕마을에 접근했다(16:18).
우리와 다른 방식의 물레방아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는데 그안에서 경전을 암송하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 우리처럼 동력이 얻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이곳에는 넓은 목초지에서 많은 야크들을 방목하여 생산한 젖을 가공하는 치즈공장이 있었는데
이미 1978년부터 빵과 치즈를 만드는 공장이 있다는 설명이다.
우리는 랑탕마을의 Village view hotel lodge에 여장을 풀었다(16:25).
길 중앙에는 초르덴(티벳 원어 발음은 `최뗀'이라고 함)이 세워져 있고 경전을 새긴 마니스톤이
둘러쌓여 있었다.
solar hot shower(태양열 온수 샤워)가 사람 죽인다.
고산을 오르면서는 세수도 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어제 젊은이에게서 들은 말이 생각났다.
`기회가 있을 때 씻어야지 잘못하면 트레킹 내내 씻을 기회가 없다'고......................
어제도 샤워했는데 어떠랴 하고 50루피를 지불하고 샤워장에 들어가 물을 틀어 놓고 기다리니
아이구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미지근한 물만 나오니 덜덜 떨면서 대충 샤워를 마치고
난롯가에 앉았는데 한기가 몰려오며 머리가 지끈거리고 구토증세가 나타나는 것이
고산증세의 시초인 것이다.
난로를 마누라 처럼 껴안고 한참을 기다려도 한기가 가시지 않는다.
닭도리탕, 녹두부침, 누룽지탕에 더운 밥을 먹고 뜨거운 차를 마셨더니 진정이 되었다.
고산산행을 하시는 분들은 최대한 간단하게 씻고 가능하면 샤워는 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난롯불이 사그라들 때까지 난롯가를 떠나지 않고 지키다가 머리가 지끈거려 어제 복용한 약에다
타이레놀 한 알을 추가로 먹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거세게 불어대는 바람소리에 잠을 깊이
이루지 못하고 몸을 뒤척이며 밤을 지새웠다.
태양열로 생산된 귀한 전기로 카메라 밧데리 2개를 충전하고 2백루피를 지불하며 주인집 침실 풍경을
담으려고 셧터를 눌렀더니 아가씨(?)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잘찍어 사진을 보내달라고 간청한다.
-제3편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