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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에 찾아 간 풍악산(1)

영원한우보 2007. 10. 18. 11:38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철따라 고운 옷 갈아 입는 산

이름도 아름다워 금강이라네 금강이라네'

 

어렸을 때 많이 불렀던 노래다.

고 정주영 회장이 소를 몰고 북으로 올라가 물꼬를 튼 이후 관광이 시작된지 여러해 되었지만

지금껏 금강산 방문 기회를 미루어 오다 이번에 그리운 금강산을 다녀왔다.

 

한 달 전부터 예약을 하고 기다리던 중 방문 날짜가 다가오자 더욱 설레이는 마음으로

싸이트에 들어가 이것 저것 검색하며 준비를 하는데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조금은 실망스런 기분이다.

 

방문당일을 맞아 등산중앙연합회가 주관하는 행사버스는 여러곳을 경유하며 금강산 방문객을

태웠지만 이십 여 명의 비교적 적은 인원이 버스의 여기 저기 띄엄띄엄 자리를 잡았을 뿐 

썰렁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였으나 단촐한 인원이면 더욱 가족적인 분위기로 관광을

잘 할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로 북을 향해 밤길을 달려간다.

 

금강산 방문을 안내하는 가이드의 개략적인 설명을 들은 우리는 달리는 버스에서 잠을

청하는데 자리가 불편하기도 하겠지만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조금은 불안한 감정이

혼재되어 제대로 수면을 취하는 사람들은 없는 듯 하다.

 

새벽 두 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내설악 휴게소에 도착한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난 후

이제 더욱 굴곡이 심한 강원도 산길을 달려 가는데 북으로 들어 가기가 결코 녹녹치 않음을

암시하 듯  온몸을 마구 흔들어 댄다.

 

눈을 감아 보지만 뒤뚱거리는 버스에서 잠들기는 더욱 힘들어 눈꺼풀은 천근같이 무겁고

새까만 차창에 무수히 금강산 모습을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차가 서고

웅성거림이 있어 눈을 뜨니 어느덧 버스는 현대아산의 화진포 휴게소에 도착했다.

 

금강산 현지를 이틀간 우리에게 안내 할 조장이라고 불리는 현대아산 직원이 소개되고

조장은 겁을 주어가며 금강산 방문에 필요한 절차와 주의사항을 설명한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는 금강산에 같이 갈 수 없게 되었다며 우리를

조장에게 인계하고 돌아간다고 인사를 건넨다.

 

우리는 신분증을 제출하고 금강산 방문증을 교부받아 목에 걸고 핸드폰까지 반납하니 

같은 나라를 방문하는 것이 타국을 여행하는 것보다 더 까다롭고 긴장감까지 느껴지는데

카메라도 북측이 제시하는 성능 이상의 것은 가지고 갈 수 없으며 녹음기나 라디오 등도

소지할 수 없음을 안내 받으니 아직은 닫혀진 북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서울에서 우리를 태우고 온 버스는 돌아가고 화진포 아산휴게소에서 남과 북을 오가는

버스에 탑승하여 십 여분 가량을 달려 남측 출입국 사무소에 이르러 출국(?)수속을 마치고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사이의 DMZ를 달리며 북녘땅으로 향하는데 차창밖은 우리가

늘상 보아온 풍경이 펼쳐지지만 기분이 묘하다.

 

조장은 연신 이동 중 카메라를 작동해서는 안된다는 등 북한 방문시 주의사항을 숙지시키며

주변을 설명해 주는데 DMZ의 중앙에 위치한 휴전선(군사분계선) 지점에 이르러서는 버스를

서행시키며 우리에게 이곳을 가슴에 깊이 담아가라는 멘트를 하니 모두들 숙연해 진다.

 

북측 출입국 사무소에 도착하니 쇠 파이프를 세우고 천막을 덮어씌워 만든 허술한 가건물이

북측의 경제사정을 여실히 대변해 주는 듯 하였으며 이곳에서 입국수속을 마치고 버스에 탑승한

우리는 드디어 북한땅으로 들어섰다.

 

차창을 스치는 남쪽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북녘 농촌마을의 풍경을 보며 약 이십 여 분을

달려서 금강산 관광 지구인 온정리로 차가 들어서는데 `금강산 관광객들을 동포애적 심정으로

환영한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오지만 어쩐지 낯선 느낌으로 다가온다.

 

온정리 지구는 금강산 방문자들을 위한 시설들이 금강산을 배경으로 잘 조화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으며 우리는 구룡빌리지(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등반에 필요한 것들을 챙겨 세존봉

등반에 나섰다.

                                     (온정각 동관과 외금강 호텔 전경)

 

                                          (금강산과 금강산 문화회관 전경)

 

구룡빌리지 뒷편으로는 남북이산가족 상설 면회소로 사용될 건물이 한참 공사중에 있었다. 

 

첫날 세존봉,수정봉, 구룡연의 코스 중 등산중앙연합회에서 같이 한 일행 모두는 등산을

목적으로 방문한 사람들이었기에 등반코스가 제일 긴 세존봉 코스를 택하고 세존봉을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온정각 지구에서 포장길로 약 이삼십 분 가량을 이동해서 세존봉 등반이 시작되는 다리앞에

이르니 늘씬하게 뻗어오른 미인송들이 우리를 맞이하고, 

 

금강산 일만 이천 봉우리 중 일부분인 연봉(連峰)이 운무를 살짝 드리운 채 우리를 반긴다.

이곳을 오르는데 우리를 안내 할 북측 안내원은 남녀 5명으로 인원을 철저히 체크하며 선임자의

통솔에 의하여 기계적으로 이루어 진다. 

 

모두들 흐르는 맑은 물에 감탄하고 운무에 모습을 감춘 연봉들의 신비함에 탄성을 지른다. 

 

사십 여 명의 세존봉 등반팀들은 그 연령층이 다양한데 일흔이 넘어 보이는 노부부도 힘겹게

등반에 나서신 것을 보며 우리의 분단역사를 엿보는 듯 하다.

 

금강산에 피어 있는 꽃들은 남녘에 그것들과 다를 바 없었으나 모두가 새롭게 다가오고

보며 걷는 그 자체가 감격스럽다. 

 

 

 

삼십 분 가량을 오르자 동석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힘차게 들려오고 주위의 연봉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데 쉬어가자며 계곡으로 내려서니 주위의 암봉들이 우리를 반긴다.

 

계곡물에 세수를 하는 것은 물론 손도 닦지 못하고 적발되면 무거운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북측 안내원의 엄포에 누구도 손씻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바라다 보면서 그들의 자연을

지키려는 노력이 새삼 대단함을 느낀다. 

 

금강의 가을은 이제 막 시작되는 듯 기묘한 봉우리 앞에 선 단풍이 곳곳에 보인다. 

 

금강국수나무와 함께 북한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는 금강초롱.

세존봉을 오르는 동안 얼마 안되는 개체만을 볼 수 있었으며 설악산에서는 많이 보았다고

말했더니 북측 안내원은 설악산도 금강산의 일부라고 엉뚱한 논리를 편다.

 

동석골을 오르며 왼쪽으로 펼쳐지는 집선봉쪽의 기암묘봉들. 

 

사진을 보아서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크고 잘 보이는 바위에는 어김없는 김일성 부자와

노동당을 찬양하는 글귀가 여기저기 새겨져 있다.

물만 오염시키지 않는다고 자연보호가 다 되는 것은 아닐텐데.................

 

 

운무에 휩쌓인 저 연봉들은 대체 몇번째 봉우리일까?

계속 금강은 우리를 사로 잡는다.

 

왕복 7시간을 등반하는 세존봉 코스는 등산을 평소에 많이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힘겹게

느껴졌을 것이며 아내도 예외는 아니어서 상당히 힘들어 한다. 

 

바위떡풀(?)이 꽃을 화사하게 피워 우리의 힘겨움을 덜어준다. 

 

샛빨간 단풍이 정열적이다.

금강의 가을은 풍악(楓嶽)이라는데 날짜가 약간 일러 진정한 풍악을 만나지 못함이 아쉽다.

 

운무가 단풍의 아쉬움을 달래주 듯 선경을 연출하기에 바쁘다. 

 

운무는 암봉을 호랑이로 만들어 놓기도 하고............

아무튼 창조주의 만물을 운행하는 솜씨에 그저 경탄 할 뿐이다.

 

점입가경의 금강의 묘봉과 운무를 보며 세존봉으로 다가간다. 

 

 

 

 

 

세존봉 전망대를 오르는 사다리는 매우 가파르고 출렁거림이 심해 두려움이 엄습하는데 계곡을

올라와 덤벼드는 광풍이 손잡이를 꽉 잡고 오르는 사람들의 기를 꺾는다.

끝없이 계속되는 사다리를 오르며 많은 사람들은 오금이 저린 듯 외마디 신음소리만 토해 낼 뿐

감히 고개를 들어 주위의 절경을 즐길 엄두를 내지 못한다.

 

사다리를 오르며 본 집선봉 쪽의 연봉들.

일천 미터가 넘는 정상부에는 제법 단풍이 들어 있었으며 한 두주일 쯤 늦게 찾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다리를 오르고 전망대를 지나 세존봉 정상에 선 사람들.

운무로 비로봉도 동해바다도 보이지 않지만 운무가 넘실대는 이곳이 선경이다.

 

정상에서 내려다 본 동석동으로 흐르는 계곡의 폭포는 끊어질 듯 이어지며 수백미터를

흘러 내리는 장관을 연출한다. 

북측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사계절 폭포라 하여 일년 내내 마르지 않고 흐른다는데............

 

선경에 넋을 잃었던 사람들은 서서히 정신을 차리고 주위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며 번갈아 셧터를 눌러 주기도 한다.

 

 

 

 

 

 

 

풍악의 선경에 도취되어 식사할 생각도 잊은 채 수십 분 헤매다가 전망대로 내려오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점심도시락을 펼쳐놓고 산상만찬 중이다.

 

비로봉 방향을 바라보며 그 모습이 나타나 주기를 애타게 기다렸으나 끝내 보여주지 않으며

다시 한번 찾아 오라고 우리를 달랜다. 

 

오후 두 시를 넘겨 전망대를 내려오면서도 주위의 풍경을 조금이라도 더 담으려고 모두들

야단이다. 

 

 

 

 

 

 

 

 

오후 네시가 다 되어서야 버스가 기다리는 동석골 입구에 도착했다. 

 

동석골을 흘러내린 玉水는 또 다른 세상을 향해 여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온정각으로 내려와 뒤 돌아 본 금강산.

운무에 모습을 감추고 있는 금강산을 배경으로 외금강호텔이 네온을 밝히고 있었다.

 

우리는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공연하는 평양 모란봉 교예단의 교예공연을 관람했는데 내내

손에 땀을 쥐고 그 신기에 긴장해 박수조차 제대로 칠 수가 없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의 공연에 놀라워하며 연습과정에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이 서려 있겠냐며

동정을 하자 그들은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모란봉 교예단은 장차관급의 인민배우, 공훈배우 등 초일류 배우 120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문화성 산하의 북한 대표적 교예단으로 모나코 교예축전 등에서 수 십차례 수상한 경력이

있다고 한다.  

 

오늘 이 공연을 보고 산행을 하면서 북측 동포들과 동포적 동질감이 느껴지기 시작하였으며 

반세기 넘게 단절되어 서먹해진 거리감을 조금이나마 좁힐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기회가 반복됨으로 인해 이질감을 해소하고 자연스레 융화함으로써 언젠가 하나되는

역사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공연 관람을 마치고 온정각 동관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마친 우리 일행은 내일의 만물상 관광을

기대하며 북녘땅에서의 첫날밤을 맞아 일찌기 잠을 청한다.

 

                                        (2007. 10. 2. 화요일)